올해 마지막으로 있는 지역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다. 앞선 3번의 대회에서 설렘과 기대가 있었다면 이번에는 전날까지도 참가를 해야 되나 계속 고민했다. 턱없이 부족한 연습량 때문이었다. 일이 바빠지기 시작하면서 일주일에 2번은 달리던 루틴이 깨졌고, 대회 전 단 두 번을 달렸는데 심박수가 너무 높았다. 역시 몸은 정직하구나 이번 대회는 무리인가 싶은 마음이 들어서 갖은 핑계를 찾게 됐다. 무엇보다 대회 당일 아침에는 늘 같이 해주던 친구가 오늘은 못 갈 것 같다고 먼저 백기를 들었다. 혼자라도 가야 되는 건가를 두고 고민했다. 날씨라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나 역시 포기했을 것을. 그날따라 날씨는 왜 이리 좋은지. 결국 혼자 걱정만 잔뜩 안고 갔다.
한 번도 달려보지 않은 코스를 뛰는데 햇볕이 따갑고 바닷길을 따라 뛰는데도 바람 한 점 불지 않았다. 묵직한 공기로 가득 찬 방안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달리는 다리를 무겁게 만들었다. 덩달아 심박수도 높아져 컨디션도 좋지 않았다. 옆에서 달리던 다른 러너들도 이게 무슨 11월이냐며 투덜거렸다. 날씨로 인해 사람들이 점점 걷게 되던 그 순간. 저 멀리 보이는 장면에 놀라고 말았다. 나이가 지긋하신 할머니들 5~6명이 나무 아래에 사이좋게 나란히 앉아 빈 생수병을 부딪쳐가며 소리를 내 달리는 사람들을 응원을 하고 계셨다. 생각지 못한 응원에 뜨거워진 발과 무거워진 두 다리에 바람이 들어오는 것 같았다. 세계적인 마라톤대회인 보스턴 마라톤대회에서는 코스 중간쯤에 있는 웰즐리 여자대학교 앞에서 여대생들이 한 줄로 늘어서서 모두 젖 먹던 힘을 다해 고함을 지르며 응원해 주는 전통이 있다고 한다. 오늘 만난 할머니들은 목소리는 작을지언정 내게는 그 장면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반환점을 돌아오는데 역시나 체력의 한계를 느꼈다. 그래도 최소한 걷지는 말자는 내 목표가 있어 꾸역꾸역 발을 디뎠다. 거의 다 와가는데 저 멀리 엄청난 오르막이 보였다. 내려올 때는 신났던 그 길이 방패처럼 떡 막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곳을 향해 가고 있는데 이번에는 귀여운 꼬마들이 나타났다. 늦잠을 잤는지 잠옷을 그대로 입고 나온 3형제와 아빠로 보이는 가족이었다. 엄마가 뛰는지 "엄마 파이팅!"을 외치고 있었다. 이토록 귀여운 응원이라니! 내 아이도 마음속으로 나를 이렇게 응원하고 있으리라 생각하며 오르막에서 멈추지 않을 힘을 얻었다.
여러 번 무거워지는 다리에 걸을까도 생각했지만 중간중간 나를 웃게 해 준 이름 모를 사람들 덕분에 이번에도 완주하고야 말았다. 지난 대회까지는 이런 경험은 없었다. 그저 묵묵히 뛰는 것뿐. 지난번 지인이 우연히 달리는 나를 봤는데 화나있는 것 같았다고 할 정도로 아직도 나는 달리는 게 쉽지는 않은 사람이다. 달리는 거에 급급한 나에게 잠시라도 웃을 여유를 만들어준 사람들, 주최 측도 아닌데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목소리를 더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해 본다. 응원하는 그 마음을 받아 평생 기억으로 소중히 간직할 사람이 어딘가에 있다는 걸 그들은 알까. 주는 마음과 받는 마음이 포개어질 때 찰나의 풍경은 오랜 추억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