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의 모니터가 흐릿해지고 에너지가 바닥을 쳐서 몸에 빨간 불이 들어오는 늦은 오후 시간. 후배에게서 카톡이 왔다. 교감선생님께 힘들다고 말했고 다른 선생님들이 후배의 일을 도와주기로 했다는 덤덤한 카톡 하나였다.
후배가 힘들다는 걸 진즉에 알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 반가워 맞잡은 손은 여리고 가냘팠으며 힘이 없었다. 마라톤 대회에서 만난 그녀는 평소보다 많이 늦은 속도로 완주한 뒤 경기장 잔디밭 위에 그대로 쓰러져 누워 버렸다. 자주 생각이 나고 걱정이 되어 집으로 차를 마시러 오라고 초대했지만 바쁜 일들이 끝나면 보자는 기약 없는 대답만 돌아오고는 했었다.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생각해보지도 않은 채 재빨리 하던 일을 멈추고 옥상으로 올라가 전화를 했다.
5년이나 같은 학교에서 내리같이 근무했던 후배는 학교에서 누군가 해야 한다면 늘 '제가 할게요'를 제일 먼저 외치는 사람이었고, 우직하게 그런 일들을 후회 없이 해주는 사람이었다. 주변에서 그렇게 까지 안 해도 된다고 말려도 그저 사람 좋은 웃음으로 되려 우리를 달래던 그녀였다.
"어느 순간부터 계속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고 가슴이 답답한 증상이 생기면서 병가를 쓰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찾아왔어요. 그런데 다들 제가 힘들게 보이지는 않았대요."
남들에게는 평온해 보였겠지만 본인은 얼마나 일상을 허덕이며 살아갔을까. 누군가 묻는 안부에 괜찮다며 웃음을 지으며 돌아섰을 그녀를 쉽게 상상하게 된다.
후배 성격에 힘들다고 말할 수 있었다는 것은 큰 용기를 낸 것이다.
"네 성격에 그런 말 쉽지 않았을 텐데 용기 내줘서 고맙고, 언니한테도 연락해 줘서 고마워. "
통화 중에도 후배는 자신의 일을 같은 학교 다른 선생님들이 맡아서 대신해 주기로 한 것에 대해 미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 네가 지금 힘들 때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고맙게 도움을 받고 나중에 네가 힘든 사람 있을 때 도와주면 되는 거야."
생각보다 자주 주변에서 힘들어도 참기 대회라도 나간 사람들처럼 묵묵히 참아내는 후배들을 본다. 아무도 하지 않겠다고 하는 일들을 맡아서 마음을 달래 가며 해내고 가지고 있는 힘을 끝까지 짜낸다. 심지어 누군가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면 죄책감마저 느낀다. 힘들어도 괜찮다고 하는 그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쓰이고 안아주고 싶어진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자신을 돌볼 겨를이다.
그동안 언제 어디서든 종종거리며 산타할아버지처럼 큰 마음의 보따리를 들고 다니면서 남들에게 에너지 선물을 나눠주던 후배가 당분간은 남들이 내어주는 여유라는 선물을 어린아이처럼 유쾌하게 받고 슈퍼 산타가 되어 돌아오기를 바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