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중요한 업무들이 겹치며 11월부터는 야근이 잦아졌다. 아이 때문 에라도 주중 야근은 하지 않으려 애쓰는데 부서를 옮긴 뒤로는 부득이한 경우가 자주 생겼다. 긴급이라는 단어가 붙은 메시지들이 넘쳐났고 퇴근 1시간 전 자료를 확인해 달라고 해서 받았는데 다음날 오전까지 제출 요구를 받으면 어쩔 수 없는 일들이 많았다. 적어도 남에게 피해는 주면 안 되기에 요구받은 급한 일들을 우선한다. 출장은 서울이나 세종으로 가느라 하루 종일 시간을 내야만 했고 그렇게 나도 모르게 점점 일이 최우선 되는 삶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일에 빠져 살수록 일상의 많은 것들은 변했다. 과거로만 두고 싶은데 지금도 사실 많은 것들이 변하고 있다. 본가에 가서 부모님을 뵙는 일도 아이에게 맛있는 저녁을 챙겨주는 일도 줄었다. 정기적으로 만나던 만남들은 쉽게 취소가 되었고 그들은 늘 한결같이 이해한다며 되려 날 다독였다. 한 번은 오랜만에 퇴근 후 친구를 만났는데 연거푸 하품이 나왔다.
"너 만나자마자 지금 하품 세 번째야."
그때는 머쓱해져 입을 다무느라 몰랐는데 오랜만에 본 친구는 꽤 서운했을 것 같다.
아무도 없는 밤.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천장을 올려다봤다. 비행기 활주로라도 되는 양 일직선으로 놓인 형광등을 보고 있자니 지독한 쓸쓸함이 밀려왔다.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아 휴대폰 속 사진첩을 오랜만에 살펴봤다. 늘 작고 소소한 이벤트가 가득했던 사진첩이었는데 언제부터인지 업무 관련으로 찍어놓은 사진들이 많았다. 지울 것들은 지우며 스크롤하는데 사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너 주려고 샀어. 너 호두과자 좋아한다고 했었잖아." 일주일 전 퇴근하고 바로 만났던 친구가 언젠가 했던 말을 기억하고 선물했었다.
"맞아 나 호두과자 좋아해!" 하루의 피로가 순식간에 뭉개지는 순간이었다. 집에 와서 까보곤 크리스마스 카드가 있어 괜히 설렜던 기억이 났다.
고마운 기억을 되새기며 많은 사람들의 배려와 친절로 내가 살아가고 있구나 싶었다. 배려와 친절에 보답은커녕 그들의 이해를 당연시 여기고 기다리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린 나를 되돌아봤다.
별의 밝기가 가장 어두운 5 등성 별들은 외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더 밝은 별들과 함께 하면서 별자리 모양을 확실하게 만들어 눈에 잘 띄도록 도와준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들이 내게는 5 등성 같은 사람들이다. 조용히 한걸음 뒤에서 내 일상을 조금이라도 빛나게 도와주는 사람들. 일부러라도 시간을 내어 나를 챙기려 들었던 사람들. 그들 덕분에 나도 나다운 모양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 그들의 마음에 더 감사하고 서운함이라는 생채기를 내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행복한 시간은 바로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이기에. 늘 소중한 것들이 멀어질 때 알아보는 어리석은 나를 싫어하게 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