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토리 Sep 29. 2021

[서평]지구 끝의 온실

읽고 쓰는 기쁨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출간 이후 작가의 첫 SF 장편소설이다. 2055년 더스트 시대, 프림 빌리지라는 온실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와 그곳에서 개량된 더스트 저항종 식물, 그 식물을 심으며 함께 살았고 그것을 전 세계로 퍼트린 사람들과, 더스트 저항 식물 모스바나의 이야기가 더스트 생태학자 아영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는 이야기이다. 솔라리타 연구소의 실수로 유출된 자가 증식 더스트로 인간을 포함한 많은 생명체가 사라졌고 내성종이라고 불리는 더스트에 적응한 인간종과 도시에 돔을 건설하여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는 거짓말 같으면서도 거짓말 같지 않은 모습으로 우리의 미래를 보여준다. 


더스트 시대와 더스트 시대 종식 이후 살아남은 자들의 마을의 형성, 짧게 지속되는 평화의 순간, 위기의 순간에 이어지는 갈등과 배신, 공동체 파국, 죽음과 종말이 보여주는 모습은 화합과 공존이라는 것이 생존이라는 주제 앞에서는 얼마나 쉽지 않은가를 생각하게 한다. 


칼 세이건은 ‘코스모스’에서 인간은 수 천년 동안 어떤 종의 식물과 동물은 잘 키우고, 또 어떤 것들은 죽여야 할지를 신중하게 선별해왔으며, 식물 스스로가 저절로 적응한 게 아니고 진실은 그것들이 가진 특성 대부분이 인간이 만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더스트 시대, 세계 곳곳에 더스트를 피하기 위한 거대 돔이 세워졌을 때 사람들은 숲이나 들판의 생물들을 위한 돔은 만들지 않았다. 많은 종이 멸종을 향해 갔지만, 빠르게 더스트에 적응해 변이 한 식물들도 있었다. 식물들은 더스트 시대에 적응하며 자신을 적응시켜 나갔고 죽은 숲에 다시 숲을 세워 덧 생태계를 일궈나가며 생명을 유지했다. 식물들의 삶에도 가득한 경쟁과 분투가 있었다. 식물에게 인간도 어쩌면 적응해야 하는 하나의 환경이었을 뿐이었던 것은 아닐까?

식물은 태양의 빛을 받아서 빛 에너지를 화학 에너지로 변환시킨다. 생각해보면 모든 지구 상의 동물은 식물에 기생하여 사는 존재라고 한다. 실제 식물학자의 눈으로 보면 식물에서 특별히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부분이 따로 있지 않단다. 그저 식물도 지구 상의 한 생명체로 생존을 위해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는 하나의 종일뿐이며 다른 생명체를 살게 하는 고마운 존재인 것이다. 


 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식물이 뭐든 될 수 있다'고 한다.  뭐든 될 수 있다는 말은 늘 좋을 수도 늘 나쁠 수 없는 양가적인 면을 지니고 있다. 모스바나가 더스트로부터 프림 빌리지의 사람들을 구했지만, 식량 고갈로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하기도 했다. 비단 식물만이 아니라 이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과 인류가 이뤄놓은 과학과 문명, 관계는 우리에게 이런 이중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다. 나에게 좋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는 좋은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책 속 주인공인 아마라의 깨달음은 우리 모두가 가진 이분법적 사고를 비튼다.


지구라는 행성은 빠르게 변했고 생명체들은 그것을 따라잡아가고 있다. 태양계를 지켜주는 플라즈마 장벽인 헬리오포즈(Heliopause)를 생각해보면 우리는 우주 속 온실 속에 있는 것은 아닐까? 레이첼의 온실 속 식물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태양계 온실 속에 사는 지구 생명체가  온실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매일의 순간순간을 각자의 방식으로 그저 살아가는 것뿐이다. 

인류가 살아가는 지구의 운명(殞命)은 우주의 팽창이 계속되어 향후 몇 백억 년 뒤가 된다고 한다. 그 기간 동안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는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의 과거가 현재를 만들었고 현재가 미래를 만들 것이다. 선형적으로 시공간이 중첩되어 발생하는 멸망과 재건은 지구의 풍경을 바꾸어 놓았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가 이미 깊이 개입해버린, 되돌릴 수 없는, 그러나 우리가 앞으로 계속 살아가야 하는 이곳 지구를 다시 생각하는 시간이 어느 때 보다 절실하다. 

책 속 아영의 연구 분야였던 더스트 생태학은 그 변화의 풍경을 포착하는 학문으로. 어떤 것들이 사라졌고, 어떤 것들이 새롭게 나타났으며, 어떤 것들이 적응해서 변화한 지구의 구성원이 되었는지가 연구 대상이었다. 이들처럼 지구라는 공간에서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고, 살아갈 우리 모두는 기억에 민감해져 우리가 만들어낸 인류에게 있었던 시공간의 변화를 기억할 책임이 있다.


파괴되는 프림 빌리지를 탈출하면서 프림 빌리지 사람들은 이 숲을 나가도 더스트 저항종인 레이철의 식물을 심겠다고 약속을 했고, 세계 곳곳에 퍼져 그 식물을 퍼트려 나갔다. 그들이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었던 힘은 세상에서 밀려난 그들을 유일하게 받아주었던,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베풀었던 그 프림 빌리지가 어느 시공간에서는 다시 계속될 거라는 믿음 덕분이었을 것이다. 오직 그것만이 끔찍한 세계를 견디게 한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그들처럼 지키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지켜야 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를 견디게 할 마지막 한 가지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작가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http://www.yes24.com/Product/Goods/103026125



작가의 이전글 [서평]공간의 미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