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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Oct 23. 2021

다행이다

12살 지구인 이야기(25)

일 년에 한 번 가는 치과 검진일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치과라는 곳은 선뜻 내키지 않는 병원이다. 특히나 지난 검진 때 치주염이 생겨서 나중에 심해지면 발치 후 임플란트를 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 가기 전부터 입안 구석구석이 쓰다.

"엄마 오늘 치과 갔다 올게."

"왜? 아파?"

"아니. 검진. 설마 임플란트 하라고 하진 않겠지?"

 지난 검진 때 아이에게 임플란트가 무엇인지, 아래 어금니를 뺄 때 얼마나 아픈지 나의 경험을 이야기해주었던 터라 아이의 표정이 고통을 느끼는 순간처럼 일그러진다.

다행히도 치과 검진 결과 지난번과 큰 차이가 없어서 관리만 잘하기로 하고 돌아왔다.

하교 후 만난 아이에게 치과를 다녀왔다고 하니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괜찮대. 그냥 치료 없이 검진만 하고 왔어. 스케일링하고."

아이의 얼굴이 환해지더니 팔을 뻗어 나의 왼쪽 어깨에 손을 얹더니 말한다.

"휴. 엄마 다행이다. 임플란트 하라고 했으면 어쩔 뻔?"

"그러게. 진짜 다행이지? 심장이 쫄깃해지는 줄 알았어!"

아이가 참으로 오랜만에 나에게 환히 웃어준다. 어느덧 내 눈 아래까지 커버린 아이가 어깨에 손을 얹으며 나와 함께 안도해주는 순간. 낯설지만 기분 좋은 느낌이 나를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내 어깨에 손을 자연스럽게 얹을 수 있게 된 아이는 어느새 내 일상을 이야기하면 조용히 들어주는 친구가 되었다. 옆에서 나란히 걸어주는 아이를 보니, 마음이 꽉 찬 느낌이다.


언젠가 아이와의 등굣길. 엘리베이터 거울로 비친 아이와 나의 모습을 보던 아이가 한마디 한다.

"엄마 내년쯤에는 내가 엄마만큼 크겠는데?"

내년에는 나만큼, 언젠가는 내가 올려다보며 이야기해야 할 날이 오겠지만 아이는 그 시절에 맞는 모습으로 내 옆에서 같으면서도 다른 모습으로 서 있을 것 같다.


부모가 된다는 것, 부모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사춘기 아이를 보며 한 번씩 더 생각하게 되는 요즘이다. 봐줘야 한다고만 생각했던 아이에게 조금씩 나 역시 기대고 의지하며 살게 된다. 가끔은 힘들다 소리도 하고, 기분 좋은 소식에는 아이 앞에서 한껏 좋아라 하며 내 삶을 아이에게 나눈다. 그런 나를 보며 아이 역시 그저 바라보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지만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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