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살 지구인 이야기(20)
하루 중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지 않다. 학교 공부가 전부인 아이지만 집에 돌아와서 저녁을 먹고 쉬다 보면 금세 9시가 된다. 얼굴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생각보다 적다는 생각에 새삼 미안하다.
하지만 그래도 아이와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시간이 있다. 바로 잠자리 수다시간이다.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깜깜한 방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하루에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거나, 저녁 시간에 서로 옥신각신이 있었다면 왜 그랬는지, 그때의 기분이 어떤지를 말하고는 한다. 보통 책을 읽기도 하는데 나와 아이가 번갈아가며 소리 내어 읽는다. 아이가 책을 읽어주는 느낌은 언제 들어도 편안하고 유쾌하다. 가끔은 어릴 적 생각이 난다며 휴대폰 손전등 기능을 켜놓고 그림자를 만들어서 놀기도 한다. 자기의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고, 나 역시 내 기분을 이야기하거나 내가 읽은 책의 내용을 이야기해주거나 한다. 밤이라는 고요함의 선물 때문일까 아이도 나도 이 시간만큼은 여유 물질이 풍성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이 시간을 사랑하는 이유가 있다. 12살 사춘기 소년도 이 시간이 마무리되면 하나의 의식처럼 "엄마 잘 자. 사랑해."라며 이야기를 해준다. 나는 작은 말과 행동 하나에도 설레고 강하게 기대를 하는 강이지과 엄마이다. 물론 '사랑해'를 말하는 말투가 무채색이 되는 느낌이고, 안 하는 날은 해달라고 보채는 날이 점점 늘고 있지만 매 순간 참 좋다.
하지만 이 시간이 가장 소중한 이유는 서로의 잘못을 진실되게 사과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점이다. 아이로서 혹은 엄마로서 크게 애쓰지 않고 편히 미뤄두었던 사과를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아까 저녁 먹을 때 짜증내서 미안해."
"하고 싶은 게 있었을 텐데 엄마 마음대로 목욕 먼저 하라고 해서 미안해." 등 하루를 돌아보고 용서를 구하는 시간이 어쩌면 우리 사이의 오해와 미움들을 덜어내주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와의 대화지만 아이를 어른의 대화 형식으로 이끌었을 때 아이는 조금 더 자신을 드러내 주었고 나를 이해해주었다. 미안한 순간에는 진심을 담아 미안함을, 고마운 순간에는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과정이 내게는 무엇보다 소중하다.
언젠가 잠자리 수다 중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장면이 문득 떠오른다.
"생각해보니 우리 추억이 진짜 많다."
"맞아, 엄마 이거 책으로 낼 정도야."
"그럴까?"
그렇게 시작된 나의 글쓰기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추억이 활자화된 글을 보고 언젠가 아이가 삶이 참 고되다 느낄 때, 잠자리에서 나눴던 대화들로 위로받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