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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Jun 07. 2021

뒤늦은 답장

내 생애 아이들(1)

 

  20년 전 초등학교 10살 아이들과 처음 교사 생활을 시작했다. 모든 게 낯설고 부족하기만 했던 나지만 나에게는 다른 선생님들보다 조금 더 잘하는 것이 하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한번이라도 본 아이들은 이름을 정확히 기억할 수 있었고, 우리 반 아이들이 공책이나 시험지에 자기 이름을 쓰지 않고 내더라도 어렵지 않게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글자는 아이들마다의 특징이 있어 각 글자의 크기와 자음, 모음자의 모양이 다 달라서 주의를 기울이면 되는 일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따라 많은 아이들이 학습지에 이름을 쓰지 않고 냈다. 이름이 적히지 않은 학습지를 들고 아이들 자리를 찾아다니며 나눠주고는 이름을 쓰라고 말했다. 이름이 적히지 않은 학습지에 이름을 써 넣으며 아이가 말했다.

  “ 선생님은 어떻게 제가 이름을 쓰지 않았는데도 다 알 수 있어요? ”

  “ 비밀!” 빙그레 웃으며 짐짓 모른 체했다.

  “그럼 저도 이름을 안 써도 선생님은 알 수 있어요?” “어떻게 알 수 있어요?”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금세 주변 아이들의 질문 세례에 소란스러워졌고 이 기회에 아이들에게 바르게 글자 쓰기를 지도해야겠다는 마음에 아이들마다 어떤 글씨 특징이 있는지 말해주기 시작했다.

  “원영이는 o자의 모양이 이렇게 약간 양쪽으로 이렇게 눌려 있어.”

  “그런가? 어! 진짜다!” 아이들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자기 글씨와 대조하면서 무슨 보물지도라도 되는 듯 자기 글씨를 찬찬히 보기 시작했다.

  “연주는 ㄱ을 쓸 때 아래로 좀 더 내려서 써.” 한명 한명 자기의 비밀의 밝혀지는 듯 다소 부끄러워하며 좋아했다.

  종호 차례가 되었다. “종호는 워낙 특이해서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어”

  내 의도와는 달리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종호를 쳐다보았다. 늘 밝은 아이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 순간 아차 싶었다. 종호는 가족들과 수년간 해외에서 지내다 온 아이였다. 유치원부터 2학년 때까지 해외에 있었기 때문에 아직은 영어가 더 익숙한 글자였다.

  ‘아......못쓴다는 말로 말한 것은 아닌데…….’

  한 시간 한 시간을 큰 실수 없이 마치는 게 목표였던 하루살이 새내기 교사였던 나는 그때 상처 받은 종호의 마음을 바로 세밀하게 살피지 못했다. 하교 시간에야 다시 생각이 나서 본 아이는 여느 때처럼 밝고 명랑한 얼굴이여서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 했고 한 학기의 시간이 흘러 학부모 공개 수업 날이 되었다. 그날따라 많은 부모님들이 오셨고 아이들은 다른 때보다 부모님들 앞에서 더 씩씩하게 발표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유달리 종호의 표정이 어두웠고 고개를 푹 숙이고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있었다. 평소 발표를 잘하는 종호가 이상하다 싶어 발표를 권하기 위해서 책상 가까이 다가갔다.

  “종호야, 다했니?” 하지만 종호는 별말없이 자신의 국어책을 가리기 시작했다. 이유도 모른채 수업을 마무리했고 종호 부모님과의 상담을 통해서 공개수업 날 책을 숨긴 이유가 선생님이 부모님 앞에서 자기가 글씨를 못 쓴다고 이야기 할까봐 숨겼다는 것이었다.

  말이라는 것이 잘못 전해졌을 때 얼마나 상대방을 힘들게 할 수 있는지를 순간 깨달으며 어린 종호에게 내가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나 싶었다. 일 년 동안 교실에서 글씨를 쓸 일이 얼마나 많았을 텐데 그때마다 힘겨웠을 아이의 마음이 전해져서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다. 그때 진정으로 사과하지 못했음을 내내 후회하며 그해가 지나고 다른 학교로 전근을 했고, 까맣게 잊고 있었던 종호가 5년 뒤 스승의 날 즈음에 중학생이 되어 나에게 학교로 편지를 보내왔다.     

  ‘선생님 3학년 때 제가 글씨를 못 썼었죠. 그래도 선생님 덕분에 글씨를 바르게 쓰려고 노력했고 이제는 보시는 것 처럼 글씨를 정말 잘 쓰게 되었어요.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아직도 이렇게 예쁘게 쓰지 못하고 특이하게 썼겠죠?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감사드립니다.’

  편지를 받고 나를 기억해준 종호에 대한 고마움보다는 내가 아이에게 글씨에 대해 트라우마를 갖게 했던 것은 아닌지, 3학년의 종호가 중학생이 될 때까지 얼마나 자기 글씨를 의식하며 한자 한자 적어 내려갔을지 미안하기만 했다. 답장을 쓰려고 해도 너무나 부끄럽고 속상한 마음에 감히 답장을 쓸 수가 없었다.

  내가 한 말과 행동, 선택으로 인해 이미 벌어진 일들. 바꿀 수 없는 것을 평온하게 받아들이자고 늘 생각하는 나지만 종호와의 일은 교직 경력이 20년이 넘은 나에게 여전히 잊히지 않는 실수이고 잘못이다. 20년 전 이즈음의 일을 다시 돌이킬 수는 없지만 이제는 누군가의 훌륭한 남편과 아빠로서 멋진 어른이 되어 있을 것 같은 종호에게 용기내어 이제는 말하고 싶다.

  “종호야. 선생님 덕분에 글씨를 잘 쓰게 되었다는 감사 편지를 받았을 때 정말 네게 감사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 부끄러웠어. 사실 선생님은 그때 너의 글씨까지도 참 좋았는데 특이하다라는 말로 네 마음에 상처를 주었고, 글자 쓰기에 힘들어 하는 너를 살뜰히 챙겨주지 못했어. 선생님이 조금 더 네 마음을 먼저 생각하고 가장 고운 말로 네가 글씨를 바르게 쓸 수 있도록 안내를 해주었어야 했는데 도리어 네 마음을 다치게 했었던 것 같아. 그때 너의 글씨는 교과서처럼 반듯한 글씨는 아니였지만 밝고 영리한 너를 닮은 그런 글씨였단다. 선생님이 20년이 지난 오늘 10살 어린 종호에게 사과하고 싶구나.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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