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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Jun 06. 2021

아무 말이나 해주세요

초등학교 1학년 담임교사는 처음입니다.(1)

 초등학교 1학년 교실에서는 생각대로 하루가 펼쳐지지 않는다. 요즘 들어 주변 정리도 안되고 수업시간에 집중을 잘 못하는 장난꾸러기 아이가 난데없이 포스트잇과 연필을 들고 나온다.

 "선생님, 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여기에다 적어주세요."

  "아무 말이나?"

  "네. 그냥 아무거나요."

  한참을 빈 포스트잇을 내려다보며 고쳤으면 하는 부분을 적어볼까 고민을 하다가 아이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은 무엇일까를 고민하며 따뜻하게 다독여보자 했다.

  ‘서진아, 서진이는 참 좋은 아이야. 서진이가 선생님 반에 있어줘서 참 고마워.’

  포스트잇을 받아 들고 간 아이가 받아 들고 읽더니 해맑게 웃었다. 갑자기 뭔가 또 부지런히 적고 다시 내게 건네며 내 귓가에 속삭였다.

  "선생님 엄청 사랑해요!”


  포스트잇을 받아 들고 나는 보란 듯이 내 교사용 컴퓨터 모니터에 붙여두었다. 아이는 매일 자기가 쓴 포스트잇이 있지는 확인하며 좋아했다. 그 뒤로 이 귀여운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랑하는 나를 위해 참 예쁜 모습을 많이도 보여주었고 나는 엄청 사랑받는 교사에 걸맞은 교사가 되고자 애를 썼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던 말들은 거창한 말들이 아니었다. 누군가 표현해준 감사함, 따뜻한 위로와 인정처럼 사소해 보이고 의례적인 듯 보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순간 딱 필요한 말들이었다. 말에는 이토록 사람을 달라지게 하는 강한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글을 쓰면서 가만히 사진을 보고 있자니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너무와 엄청의 차이 알고 있는 것일까 놀랍다


  너무: 정해진 정도나 한계에 지나치게

 엄청: 양이나 정도가 아주 지나친 상태.


 그리고 그때 말해주지 못한 게 생각나 갑자기 후회가 된다.


'서진아, 선생님은 서진이가 선생님을 너무 사랑해도 좋고, 엄청 사랑해도 좋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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