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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Feb 02. 2022

어디 가시게요?

설날. 차례가 끝나자마자 아버지가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으시더니 가방을 꺼내고 뭔가를 챙기신다.

"어디 가시게요?"

"응. 엄마랑 산이나 다녀오려고!"

"엄마랑요? 지금요?"


아버지는 9급 공무원으로 시작하셔서 공무원으로 올라갈 수 있는 마지막 위치까지 올라가셨던 분이다. 그러기에 늘 바쁘셨고 지금도 바쁘시다. 사회활동이 많고 외향적인 아버지에 비해 어머니는 그냥 조선시대 종갓집 며느리 같은 분이시다. 제사상을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리셨고, 늘 아침이면 아버지의 와이셔츠를 칼주름을 잡아 다리셨다. 한 번에 다리시지 왜 매일 아침 새벽에 하나씩 다리시냐고 물어보면 바로 다려야 주름이 잘 잡히고 더 말끔하게 입게 된다고 하셨다. 외출이 거의 없으시고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신다. 두 분이 성향이 달라 함께 어딘가로 외출하는 일이 드물다. 아버지는 자꾸 나가자고 하지만 어머니는 늘 마다한다. 그렇게 두 분의 나이는 70을 훌쩍 넘어 이제 8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차례가 끝나면 정리 후 눕기 바쁘셨던 어머니인데 산을 간다니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그것도 설날 차례가 끝나자마자!


"배고프면 음식 꺼내 먹고 집에서 놀다가 가라."

늘 오면 뭐하나라도 더 주지 못해서 바쁘게 손을 움직이시며 부엌을 떠시지 못했던 어머니가 보여주는 세상 쿨함에 머릿속이 시원해진다. 얼마나 지났을까 산에 간다고 나가신 어머니가 여러 장의 사진을 보내오셨다. 이정표가 훤히 보이는 그런 사진. 좋으셨냐고 물으니 동네 공원 하고는 비교가 안된다며, 다음에 또 갈 생각이라고 하다.


사실 어머니는 지난해 치매 경계선에 있다는 진단을 받으셨다. 자꾸 뭔가를 잊어버리셨다. 금방 드린 용돈을, 전화드려 말했던 내 일상을, 금방 드신 점심을. 다행히 검사 결과 치매라는 판정은 아직이지만 어느 순간 기억을 더 많이 잃어버리시게 될까 아버지와 나는 고민이 많다.


그런 어머니를 위해 평생 일만 해 온 아버지가 달라지셨다. 여전히 외부 활동을 하고 계신 아버지가 출근 후에도 매일 같이 서로에게 전화를 해서 안부를 묻는다. 운동은 다녀왔는지, 점심은 먹었는지 등등. 똑같은 대화 일지 몰라도 늘 서로의 안부를 챙기신다. 그리고 그런 내용을 아버지가 내게 알려주신다. 매일 어머니는 명심보감을 필사하시고 아버지가 그 필사 내용을 확인하신다고 한다. 이번 설에도 갔더니 내 이렇게 하고 있다며 보여주셨다.

"이것 봐라. 엄마가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부모님을 바라보며 서로가 서로를 살게 하는 수호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에게서 받은 사랑에 대한 예의로 부지런히 세상을 견디고자 하는 그 힘의 가치를 다시 한번 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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