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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Feb 01. 2022

쌤 안녕하세요!

올해로 초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한 지 22년째가 된다. 매년 의식처럼 아이들을 만나고 헤어진다. 22년쯤 되면 만났던 아이들이 많다 보니 기억이 흐려질 법도 한데 아직도 아이 한 명 한 명이 선명하다. 첫 해 담임을 했던 아이들은 번호까지도 기억이 난다. 외우려 든 적은 없지만 그냥 아이 얼굴을 떠올리면 기억이 난다.

 

"선생님, 저 기억하세요?" 서른이 넘고, 나보다 키가 훌쩍 큰 아이가 머리를 긁적이며 물어본다.  

"응! 너 5학년 4반 19번이었잖아."처럼 번호까지  말해주면 어떻게 그걸 기억하냐고 흠칫 놀란다.

 

어엿한 성인으로 제 몫을 다하며 세상을 살아는 아이들이 10년, 15년, 참 오랜 세월을 건너뛰고 연락이 온다. 가끔은 SNS 메시지로, 카톡으로, 전화로, 문자로, 편지로 정말 느닷없이 온다.

오래전 만났던 나를 잊지 않고 기억해주었다는 것. 오랜만이라 어색할 법도 한데 그 어색함을 누르는 용기를 가지고 나에게 연락해준 마음이 참으로 고맙다.

 

설 연휴 첫날, 15년 전 2학년 담임교사를 했을 적 제자 은서에게서 카톡이 왔다.


'쌤 안녕하세요!! 완전 오랜만이네요.'


연휴를 맞아 고향에 돌아와 2학년 때 일기장을 보니 내 생각이 났다고 한다. 대학생이 된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일기장을 보고 있다니!

그 시절 일기장을 가지고 있는 것도 놀라웠고, 그 시절의 일기장을 나에게 공유해주며 16년 전으로 함께 데려가 준 아이가 고마웠다. 지금 학교 현장에서는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일기 검사는 인권 침해 소지가 있다는' 결정서를 발표한 이후 어느 해부터인가 아이들에게 일기를 쓰게 하지도, 검사(?) 하지도 않고 있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많은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일기를 써보게 하고, 낱말이나 맞춤법을 바르게 고쳐주거나 아이의 하루에 대해서 선생님의 의견을 적어서 되돌려주고는 했다. 그러면 어떤 아이들은 선생님의 의견에 답장을 달아주는 귀여움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 아이에게 그때 어떤 말들을 써주었을까? 문득 궁금해질 찰나에 아이가 사진을 한 장 보내왔다. 내가 아이의 일기장에 남겨주었던 이 담긴 사진이었다. 한참을 보고 있자니 그 시절 9살 아이의 일기를 진지하게 읽고 아이의 마음을 응원해주고 있는 내가 보이며 그 교실, 그 책상, 그 공기가 기억이 났다.


사실 전화번호를 바꿀 일이 있었는데 바꿀 수가 없었다. 언젠가 오늘 은서처럼 갑자기 나를 만났던 아이들이 추억을 돌아보다 느닷없이 내 안부가 묻고 싶을 수도, 행복한 일로, 슬픈 일로 나를 찾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때도 오늘처럼 함께 추억으로 가줄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하기에 조용히 나는 그냥 이 자리에 머물 뿐이다. 이 자리에서 나를 만난 아이들이 어엿한 성인으로 제 몫을 다하며 건강하게 세상을 살아가길 바라는 게 교사인 내가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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