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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Feb 03. 2022

나 오늘 몇 점이야?

13살 지구인 이야기(9)

"엄마가 초등학교 선생님이야?"

"아... 그래서 학원 안 보내는구나."라고 모르는 사람들은 말하지만 나는 아이에게는 그냥 엄마일 뿐이다. 사춘기에 들어선 아이의 공부를 조금이라도 선생님 모드로 가르쳐 주려고만 하면 그때부터 사이가 멀어진다.

조금이라도 틀린 부분을 말해주거나 고쳐주려고 하면 일단 잔소리로 받아들이는지 내 말에 일단 반감이나 불편함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일단 나도 기분이 상한다. 조금만 찬찬히 들어주면 좋을 것을 눈을 흘기는 모습을 보면 좋을 리 없다.


드디어 오늘은 참다못한 내가 쓴소리를 했고 아이도 지지 않았다. 여기서부터는 상상이 가능하다. 사춘기 아이와 부모의 날 선 싸움이다.

나는 선생님 모드 더하기 엄마 모드를 더해 아이에게 불편한 마음을 쏟아냈고, 아이는 엄마는 내 마음을 알지도 못한다면서, 왜 공부는 해야 하는 거냐며 큰 목소리까지 오고 갔다. 감정적으로 치달아 신파극이 펼쳐질 위기까지 왔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그래도 그것만은 하기 싫어서 입을 틀어막았다. 늘 마지막 말이 될 수도 있는 말은 하지 말자라는 마음으로 살기에 그냥 거기서 멈췄다. 몸에 새긴 상처보다 마음에 새긴 상처가 쉬이 낫지 않는 법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이도 나도 불편한 밤을 보냈다. 다음날 우리는 다시 예전 사이좋은 모드로 돌아갔다. 우리 둘의 특기는 바로 사과하고 불편했던 일을 없었던 일로 만들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가 달라졌다. 갑자기 자기 방을 청소하고 책을 읽기 시작하더니 문제지를 책상에 앉아서 푸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 잔소리나 간섭이 될지 몰라 조심히 바라만 보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방에서 아이가 나오며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크게 말한다.

"엄마, 나 오늘 몇 점이야?"

"100점! 근데 너무 착하니까 불안하다."

"내가 어제 참 교육을 받아서 말이지."

"참 교육?"

"오! 효과 좋은 걸? 앞으로 일 년에 한 번은 해줘야겠어!"

"엄마, 너무 자주 써먹지는 말고"


아이가 참 교육이라고 말하는 어제의 일을 돌이켜보면 내가 가르쳐 준 것은 없었다. 단지 엄마로서의 내 마음을 낱낱이 털어놓았을 뿐이다. 아이의 행동을 보며 내가 느낀 감정, 부모인 내가 바라는 것과 그 이유를 말했다. 그리고 아이가 원하는 바를 끝까지 들었다.

부모와 아이와의 싸움이라니! 피해야 될 것으로만 알았지만 싸움은 피해야 되는 게 아녔을지도 모른다. 격렬하게 자기의 마음을 쏟아낸 후 탈탈 털어서 말릴 수만 있다면 서로가 서로의 해우소가 되어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당분간 참 교육은 그만하고 싶다. 아이도 나도 웃는 얼굴이 예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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