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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Feb 06. 2022

늘 누군가 있었다

13살 지구인 이야기(10)

아이와 가끔 저녁이나 주말에 동네 놀이터에서 배드민턴을 치고는 한다. 그런데 기온이 뚝 떨어져 바람이 유독 쌀쌀한 날씨에 밖에서 치기에는 엄두가 안 난다. 며칠 전에는 저녁을 먹고 나갔다가 공이 바람에 마음대로 움직여 칠 수가 없어 그냥 집으로 들어와 아이가 무척 아쉬워한 적이 있었다.

집 근처 배드민턴을 칠 수 있는 실내 체육시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일단 아이와 가보자고 나섰다.

점심시간이어서 인지 아무도 없어 처음 이용하는 우리가 넓은 공간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었다.

"진작에 이런 곳에서 칠 걸 그랬네."

따뜻한 곳에서 바람에 신경 쓰지 않고 마음껏 셔틀콕을 치며 우리 모자는, 아니 정확히 나는 잠시 신이 났다.

13살이 된 아이의 체력을 40살이 훌쩍 넘은 엄마가 감당하기는 슬슬 벅차다. 아이는 연이어 '한 세트 더!'를 외쳤지만 마르지도 않은 목을 물로 축이며 잠시만 쉬자고 아이를 달랬다.


그런데 이때 구세주가 등장했다. "제가 한번 쳐드릴까요?"  바로 시설을 운영하시는 사장님이다.

아이 보고 라켓을 잡으라고 하더니 아이에게 자기가 보내는 공을 한번 쳐보라고 하셨다.

나와의 게임에서는 볼 수 없었던 셔틀콕 랠리가 이어진다. 기분 좋은 소리가 넓은 체육관에 울려 퍼지고 아이의 얼굴은 빨갛게 상기되어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공을 끝까지 보고 쳐야 되는 거야."

짧지만 단호한 가르침에 아이는 더욱 정신을 집중하여 경기에 참여한다.  

"점심시간에 오면 제가 있으니까 언제든지 오세요."


"엄마, 다음에 또 오자." 아이가 배드민턴장을 나오며 말했다.

"신이 났어? 힘들지는 않고?"

"정말 오랜만에 스트레스가 쫘악 풀리는 기분이었어." 그렇게 오늘 배드민턴장 첫나들이는 끝이 났다.


아이와 둘이 지내기 시작할 때 나는 내가 슈퍼우먼이 되어 다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가 해줄 수 없는 것들이 있구나!' 하고 느끼는 순간순간이 생겼다.

그 순간을 돌아보면 그때마다 오늘처럼 늘 우리에겐 누군가 있었다.


아이에게 시간을 내어 자전거 타기를 배워준 친구, 멀리 떨어진 이곳까지 와서 축구를 해주던 삼촌, 출장이나 회의 참석으로 바쁜 나를 대신해서 늘 아이를 집으로 데려다주던 후배, 아이 생일이면 기꺼이 와서 축하해주는 이모와 삼촌들, 아이의 생일 선물을 조용히 보내오는 후배, 외동인 아이가 외롭지 않게 자주 집에 들러주는 친구 가족. 아이에게 전해 주라며 용돈 봉투를 건네는 친구, 햇살 좋은 주말 가족 캠핑에 우리 모자를 초대해주는 후배 가족. 이런 마음들이 모여 어쩌면 외로울 수 있는, 둘만으로는 경험하기 힘든 일들을 경험하며 삶을 즐기며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것 같다. 항상 그 마음들을 하나씩 갚아나가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언젠가는 아이도 자기 힘으로 살아내려고 애쓰는 어른이 되면 아이의 삶 속에 배경처럼 있던 이 고마운 사람들에게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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