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토리 Feb 28. 2022

어떤 문제야!

13살 지구인 이야기(15)

올해 6학년인 아이는 초등학교 내내 학원을 다니지 않고 스스로 공부를 해왔다. 선행을 해본 적이 없고 그저 학교 진도와 수준에 맞춰서 뒤쳐짐이 없을 정도로 공부를 했다. 그런데 6학년이 되니 친구들과 비교했을 때 혼자만 못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했다. 그래서 아이와 방학  인터넷 강의를 보고 6학년 1학기 수학을 예습해보기로 했다. 꾸준히 해서 겨울방학 동안 6학년 1학기 수학을 스스로 마쳤고 지금은 응용 문제지 하나를 사서 공부하고 있다.

그저 내가 하는 일은 아이가 푼 문제지를 가져오면 채점해주고, 문제가 틀렸을 경우 물어보면 풀이를 도와주는 정도이다. 그런데 가끔 문제가 많이 틀리면 혼자서 씩씩 대기도 하고, 공부는 왜 해야 되는지 모르겠다면서 나에게 괜한 심통을 부리기도 한다. 이럴 때는 왜 그러냐고 나까지 한마디 거들었다가는 공부만이 아니라 나와의 관계도 좋아질 리 없기 때문에 아이 마음이 조금 가라앉기를 기다린다. 자기도 잘해보려고 하는데 잘 안되니까 화가 나는 것임을 충분히 알기 때문이다.

잘하려는 마음과 실력이 차이가 조금씩 좁혀 들어갈 즈음 아이가 방에서 공부를 하다가 큰 소리로 외쳤다.


"엄마, 나 6학년 수학 시험지는 딱 100점짜리 가져다줄게!"


이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싶다가, 그래도 아이가 수학에 자신감을 보여주는 기분 좋은 외침이기에 미소가 절로 인다. 의기양양하게 다 푼 문제지를 내밀며 채점을 해달라길래 채점을 해봤더니 이게 웬일인가! 응용문제 세 문제가 있는 문제지 한쪽이 전부 다 틀렸다. 문제가 틀리면 예민하게 반응하는 아이라 그냥 조용히 덮고 책상 한편에 밀어두었다.

"엄마, 어때? 내가 잘 풀었어?" 잔뜩 기대하는 눈치다.

그냥 오늘은 모르고 넘어갔으면 했는데 기어이 문제지를 펼쳐 들고 틀린 것을 보더니 갑자기 눈물을 흘린다.

왜 그러느냐고 물어도 말이 없다. 그렇게 한참을 서럽게 울던 아이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한다.

"나 이거 진짜 열심히 푼 문제라고. 근데 다 틀렸다고"


얼마나 열심히 했길래 수학 문제 틀린 것 가지고 눈물을 흘리는지 안타까워 소리를 높이며 수학 문제지를 펼쳤다.

"도대체 어떤 문제야! 어떤 문제가 너를 울리는 거야!"

눈물을 흘리던 아이는 내 행동에 눈물을 멈추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아이의 어깨를 조용히 두드려주었다.

최선을 다해 보려는 마음, 잘해보려는 그 마음을 알기 때문이다.


고학년이 되면 확실히 공부의 내용이 어려워진다. 교과서 수준보다 시중에 나온 문제지의 수준은 훨씬 높다. 조금 깊이 있게 공부를 해보려고 심화된 문제지를 사면 교사인 나도 한참 생각해야 되는 문제들이 보인다. 오늘도 아이의 독해 문제지에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에 대한 내용이 나와서 너무 놀랬다. 이런 문제들을 스스로 해보려고 애쓰는 아이의 노력이 그저 고마울 뿐이다.


글을 쓰며 아이가 왜 그렇게 울었을까 생각해보니 아이는 어쩌면 수학 문제를 잘 풀어서 내게 칭찬을 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아이의 공부로 인한 결과가 어찌 되었든 아이를 응원하고 사랑할 것이다.

수학 문제 한 문제 더 푸는 아이보다 자신을 믿고 사랑하는 건강한 사람이면 족하다.


'공부 못해도 된다. 건강히 만 자라렴.'

그 말은 늘 유효했고 지금도 유효하며 앞으로도 유효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소중한 인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