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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Mar 13. 2022

나의 음식 수첩 1호, 재래식 순두부

나는 어릴 적 꽤나 말라깽이였다. 항상 반에서 몸무게가 가장 적게 나가는 아이였다. 딱히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밥을 먹는 게 귀찮았다. 초등학교 시절 밥 먹는 게 귀찮아서 한 알만 먹으면 살아가는데 아무 문제가 없는 그런 약이 개발되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란 적도 있다. 물론 지금은 한 껏 먹는 재미에 빠져 있어 당시의 어린 나를 내가 이해 못 한다. 그런 어린 시절, 단연코 내 엄마의 고민은 나의 건강과 밥이었다.

아무리 밥을 맛있게 해 줘도 먹는 양이 적거나, 안 먹으려고 해서 엄마의 고민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엄마와 나란히 걸어가면, 키도 크고 체격이 좋은 엄마와 말라깽이 딸을 보고 주변 어른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야기하곤 했다.

"딸도 좀 먹여. 혼자만 먹지 말고."


당시에는 재래시장에 가서 장을 보고 와야 되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내가 기억하는 엄마는 날씨도 개의치 않고 신선한 식재료를 사 와서 늘 나에게 밥상을 차려주셨다.

어느 날인가 시장에 다녀오신 엄마가 시장에 있는 두부공장에서 사고 왔노라며 물컹한 무언가를 꺼내셨다.

하얗고 으깨져 흐물흐물 거리는 것이 담겨있었다. 두부를 사 오시다가 엄마의 실수로 으깨 버린 게 아닌가 할 정도였다.

봉지에서 꺼내 내게 바로 한번 맛보라며 한 숟가락 내어주셨다.

"싫어. 생긴 것도 이상하고 이게 뭐야?"

"한번 먹어봐. 맛없으면 안 먹어도 돼"

애타게 말하는 엄마의 말에 한번 먹어봤더니 부드러운 식감에 고소한 맛이 입안 가득 퍼져 맛이 좋았다.

"맛있어."

"맛있지? 두부공장에서 바로 나온 거라서 맛있을 거야."

그날은 웬일인지 별다른 반찬 없이 그것만으로도 밥 한 공기를 다 비웠다.

"잘 먹네."

그 뒤로부터 엄마는 내가 밥을 잘 못 먹는다 싶거나 아플 때면 종종 두부공장에서 바로 나온 하얗고 몽글몽글한 콩 향이 가득한 순두부를 사 오셨다. 나오는 시간까지 확인하시고는 일부러 그 시간에 가서 다녀오셨다. 하지만 가족보다는 친구가 좋아지고, 순두부보다는 치킨을 좋아하게 되는 청소년기를 거치며 서서히 내게는 잊혔던 음식이었다.


며칠 전 친구가 순두부를 먹으러가 가자고 해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식당에 가게 되었다. 메뉴판에 재래식 순두부라는 메뉴가 있었다. 어릴 적 내가 먹었던 그런 순두부구나 싶어 시켰다. 주문을 했더니 하얀 순두부가 큰 그릇에 담겨 나왔다. 일단 모양은 내가 어릴 적 먹던 그 하얀 순두부와 같았다. 하지만 사실 큰 기대감은 없었다.

'어디 한번 먹어볼까?'

첫 술을 입안에 머금고 있는데 갑자기 어릴 적 밥 안 먹으려던 말라깽이 앞에 순두부 한 숟갈을 내밀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저 입맛 없는 말라깽이 딸이 조금이라도 더 먹을 수 있기만을 바라던 엄마가 발품을 팔아 재래시장까지 걸어가서 사 왔던 재래식 순두부를 다시 떠올리니 미처 내가 몰랐던 엄마의 마음이 느껴져 목이 메어 삼키기가 힘들었다.

입안에 한 술 넣고 맛을 느껴봤다. 부드러운 식감에 고소한 맛이 온 입안을 채운다. 국물을 한 술 더 넣어보니 콩 향과 뜨끈함이 나를 30년 전 그때로 데려다준다.

'이 맛이야. 그 두부공장 순두부 맛.'

함께 먹으라고 간장도 나왔지만 일부러 넣지 않고, 밥도 먹지 않고 그저 순두부 한 그릇만 먹었다.

30년 만에 느껴보는 그 맛이었다.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은 그냥 그 연한 콩 두부 맛.

"아... 너무 좋다." 탄식처럼 입에서 말이 왔다.

"맛있어?"

"옛날 엄마가 사다 주던 두부공장 순두부 맛이야."

웬 두부공장인가 하는 표정으로 친구는 나를 쳐다봤고 나는 또 한차례 '내가 어릴 적에...' 시리즈를 풀어놓았다.


영화 <라따뚜이>에는 까칠한 음식 비평가가 '이고'가 나온다. 그날도 어김없이 수첩과 펜을 옆에 두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인공 쥐인 레미가 만든 음식을 맛본 순간. 이고는 어린 시절 잘못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엄마가 만들어준 라따뚜이로 행복해했던 그 순간으로 잠시 돌아가고 행복을 느낀다.  

오늘 나는 이고처럼 일회용 비닐봉지에 담아온 김이 모락모락 나던 두부공장의 순두부가 그릇에 담기고 바로 내 눈앞에 펼쳐지던 그 순간으로 잠시 다녀왔다. 갓 쑤어 콩 향이 짙고 보들보들하고 엄마가 비탈길을 오르며 사 왔을 순두부.


어린 나처럼 입맛이 없고, 밥 먹기가 귀찮을 때면 나는 엄마의 사랑으로 건강하게 밥을 비우던 그 시절로 되돌아갈 준비를 하고 그 순두부를 먹으러 다시 갈 것이다. 먹고 나오면 몸과 마음의 허기는 어느새 사라져 있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내가 잘 먹고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랬던 엄마의 바램은 내 삶에 저축되어 이렇게 춥디 추운 인생을 순두부처럼 훈훈하게 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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