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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Mar 10. 2022

Ish

하루 한 권 영어 그림책의 위로(셋)

말은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되는 강한 힘이 있다. 어떤 말들은 너무 차갑고 무거워 순식간에 마음을 닫아버리게도 하고 평생 지우지 못할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한편 누군가 표현해준 감사함, 따뜻한 위로와 인정처럼 상대방의 마음을 보듬어 주는 말들은 듣는 사람을 다시금 살아가게 하는 에너지를 주기도 한다.


여기 레이몬이라는 꼬마가 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레이몬은 언제 어디서든 무엇이 그림을 그리는 아이다. 그런데 어느 날 형이 와서 그림을 보더니 이게 뭐냐고 웃음을 터뜨리고 그 뒤부터 레이몬은 무엇을 그리지 분명하게 그리고자 애쓴다. 하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기를 여러 달 급기야 그림을 그리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뒤에서 지켜보던 동생이 구겨서 던져버린 그림을 가지고 도망치자 화가 나서 따라갔다가 동생의 방을 보게 된다.  

동생의 방문을 연 레이몬은 자신이 구겨서 던져 버린 그림들을 하나씩 벽에 붙여둔 동생의 방을 보고 놀라게 되고 동생과 대화를 나누다가 동생의 말 한마디에 구겨 버렸던 그림들을 다시 보게 된다.


"That was supposed to be a vase of flowers." Ramon said.(꽃병을 그리려고 했었어.)

"but it doesn't look like on(그런데 꽃병 같지가 않아.)

"Well, it looks vase-ISH" she exclaimed.(음, 꽃병스러운 것으로 보이는데!)

"Vase-ISH?"(꽃병스러운 거?)

정확하게 그리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 레이몬은 주변의 세계를 그리고 또 그리며 그림 그리기의 재미를 다시 찾게 된다는 이야기다. 가만히 돌아보니 나 역시 많은 부분 완벽해야 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완벽한 부모, 완벽한 교사, 완벽한 딸. 그런데 완벽한 나보다 조금은 부족하더라도 충분히 나 다운 나는 어떨까? 하는 생각이 그림책을 보며 들었다.


언제인가 매일같이 글을 쓰는 나를 보고 아이가 물은 적이 있다.

"그래서 엄마 브런치 작가는 진짜 작가야?"

"아직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데 왜 계속 글을 써?"

딱히 뭐라고 할지는 몰랐다. 그냥 웃고 말았지만 꼭 출간을 해야만 작가겠는가? 뭐든 이렇게 귀찮음을 이겨내고 글을 낭비하며 쓰다 보면 어느새 나만의 글스러운 것들(writing-ish)들이 쌓여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작가가 될지 누가 알겠는가. 나도 이야기에 나오는 레이먼처럼 마음 편히 무엇이든 내 세상에 대해 끄적이는 이 생활을 계속하려고 한다. 아직은 그냥 이렇게 머릿속에서 튀어 오르는 생각들휘발시키지 않고 글로 붙잡아두는 게 참 재미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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