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금오름

제주 오름 바라기(2)

몇 해전 텔레비전에 유명 연예인이 이 오름을 오른 내용이 방송을 탄 뒤로 제주 사람들에게도 낯설었던 금오름은 유명한 오름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이제까지 갔던 어떤 오름보다 관광객들이 많았다. 제주의 바람을 아는 나 같은 토박이들은 겹겹이 옷을 입었지만 여행을 온 그들은 이미 몸도 마음도 봄인 듯 한결 옷이 가벼웠다. 여행자의 발랄한 기운을 받으며 그렇게 오름 등반은 시작되었다.

오르는 길이 포장되어 넓게 정상까지 뻗어 있어서 날씨의 영향을 받지 않고 오를 수 있었다. 전 날 비가 내린 탓에 불편하지 않을까 했지만 오르는데 아무런 제약이 없었다. 그러나 굽이굽이 길이 굽어지고, 굽은 길 옆으로 풀꽃, 억새들이 피어있는 흙길을 좋아하는 나는 아쉬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정상에 이르니 탁 트인 경관에 이게 제주 오름을 오르는 이유라며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셀프 360 카메라가 되어 제자리에게 한 바퀴 빙그르 돌아본다. 남쪽의 한라산이 보이지 않아 아쉬운가 했더니 멀리 비양도가 보이고 서쪽으로는 고산 수월봉과 당산봉, 저 멀리 송악산과 모슬봉까지 보인다. 날이 맑은 날이었다면 더 선명하게 보여 눈이 즐거웠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았다.

정상의 분화구를 따라 분화구 둘레를 돌 수 있는 길을 꼭 걸어보라고 하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오름을 오를 때 정상에 오면 사진을 찍고 내려가지만 오름을 제대로 느끼려면 반드시 분화구 둘레를 돌아봐야 감동은 배가 된다. 한 자리에서 빙 둘러봐도 좋지만 발품을 팔아 한 발자국 더 내딛으면 또 다른 풍경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오름 정상에서 제주의 거친 바람을 느끼며 이 시기에 걸어보면 자연 앞에서 내가 얼마나 자그마한 존재인가를 느끼게 된다. 커 보이던 일상의 걱정과 근심도 조금은 작아지고, 그저 호흡에 온 마음이 집중된다.

금오름에는 다른 오름과 다른 특이함이 하나 있었다. 보통 오름의 분화구에는 사람들이 들어가는 일이 드문데 이곳은 움푹 파인 분화구를 따라 사람들의 발걸음이 만들어 놓은 길 주변에 수많은 작은 돌탑들이 모양과 크기를 달리하여 많이도 만들어져 있었다.

"저 돌들은 다 어디서 나온 거래? 저기만 저런 돌들이 많은가?"

유달리 이 분화구에만 돌이 많은 것인가 궁금해하며 분화구로 내려갔다. 자세히 보니 바닥에 파인 부분이 여럿 눈에 띈다. 사람들이 주변에 놓인 돌들만이 아니라 땅에 박힌 돌들까지 꺼내어 이런 탑을 만들어 놓았다.

"이건 무슨 거대한 제단 같지 않니?"

나 역시 돌을 하나 뽑아 어디든 올려둬야 할 것 같은 기분이 온몸을 감쌌지만 돌은 원래 있던 자리가 더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올라와 나까지 돌을 들어 올리지는 않았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 분화구에는 비가오면 물이 고이는 산정호수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사람들이 돌탑을 쌓는 이유는 여러 가지였을 것이다. 단순히 누군가 쌓아놓은 것을 보고 '나도 하나!' 하며 올려놓았을 수도 있고, 기념사진용으로 하나 얻었을 수도 있고, 정말 무언가에 대한 간절함을 담아 돌 하나를 쌓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돌을 쌓는 이유는 어떤 경우는 자신의 행복을 바라는 돌 하나였을 것이다. 행복을 바라는 바램 하나하나가 모여 금오름의 분화구는 독특한 기운을 만들어낸다.   

최근에 오름을 오르기 시작하면서 오름마다 하나하나 이름을 붙여주고 싶어졌다. 오름마다 특징이 드러나는 수식어 하나쯤은 붙여준다면 퍽 재미있는 일이 아닐까. 제주, 금오름. 너는 나에게 돌탑 오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