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먼저 피면 좀 어때!
by
도토리
Mar 23. 2022
아래로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지난주
금요일 아침 출근길이었다. 출근하는 길에 갓 피기 시작한 하얀 벚꽃이 눈에 띄었다. 그런데 가로수로 벚꽃을 심어 놓은 긴 가로수길 수십 그루의 벚나무 중에서 오로지 한 그루에만 하얀 벚꽃이 피었다.
"어! 저기 봐. 벌써 벚꽃이 피었어."
"성격이 급하네." 아이도 신기한 듯 바라보다가 한 마디 한다.
"그러게. 근데 작년에도 저 벚나무가 제일 먼저 폈었어."
"속도위반인데!"
주말이 지나 어제 다시 보니 조금 더 활짝 피었다. 주변 벚나무들도 꽃망울이 조금 도톰해지고 한껏
필 준비를 하는 것 같기는 하지만 아직 꽃은 보이지 않는다.
나 홀로 활짝 핀 벚꽃을 보고 있자니 봄이구나 싶었다. 왜 이 벚나무만 먼저 폈을까? 먼저 핀 벚나무가 유달라 보이다가 먼저 좀 피면 어쩌냐 하는 생각이
든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지만 어떤 이유로든 이 벚나무는 먼저 필 환경이 만들어졌을 뿐이다. 벚나무의 종이 달랐을 수도, 그 부분만 나무가 자라기에 더 적합한 햇볕과 공기가 있었을지도, 이도 저도 아니면 누군가 돌봐주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이 세상에 생물들은 다 일정한 기간이라는 것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나름의 생육기를 정해놓고 그 기간에 그 정도의 생육이나 발달이 다르면 뭔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일단 자를 들이밀게 된다.
호르몬의 영향으로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불안해진다는 사춘기, 노화가 시작되어 많은 변화가 생긴다는 갱년기 등 우
리 스스로에게도 많은 기간을 정해놓고 있
다
.
그 시기가 언제 오든 개인만의 이유일 것이고, 각자의 속도가 있을 것이다. 제주의 벚꽃 개화시기! 모두 그 시기에 피라는 법이 어디 있
단 말인가.
각자의 속도로 살아가면 된다. 가끔은 서두르기도 가끔은 지각하기도 하면서 살아가면 되는 것이 아닐까.
오늘 아침 출근길에 보니 아직도 혼자만 핀 벚꽃은 흐드러지게도 피었다.
내년에도 이 마음 급한 벚꽃이 제일 먼저 필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만약 다시 핀다면 그때는 올려다보며 한마디 건네야겠다.
"잘했다. 올해도 일찍 왔구나."
keyword
벚꽃
에세이
벚나무
19
댓글
1
댓글
1
댓글 더보기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도토리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에세이스트
삶의 변곡점마다 답을 책에서 찾고 글을 쓰며 우리 엄마는 울트라레어 엄마라고 말하는 16살 남자 지구인과 함께 살아가는 교사였다가 어쩌다 지금은 장학사입니다.
구독자
115
제안하기
구독
작가의 이전글
제주, 금오름
엄마가 왜 좋아?
작가의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