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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Apr 11. 2022

제주, 궷물오름

책을 읽다 보면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해 온 것들이 새삼스럽게 달리 보여 한참을 쳐다보게 될 때가 있다. <총, 균, 쇠>를 읽다가 다음 문장을 만나고서 그랬다.


철 따라 달라지는 낮의 길이, 기온, 강수량 등은 종자가 발아하고 묘목이 성장하고 다 자란 식물이 꽃 종자 과일 등을 발육시키도록 자극하는 신호가 된다(p.271)


비단 식물만이 아니라 길어지는 낮의 길이, 따뜻해지는 온도에 나의 삶 자극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는 이 자극들로 어떤 성장을 하고 있을까 생각하게 . 이 봄이라는 계절은 나로 하여금 자연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를 주어 나에게 다양한 생각들을 더하기 해는 것 같다.


오늘은 궷물오름에 다녀왔다. 여느 오름처럼 입구는 비슷한 느낌이었지만 한 주가 다르게 제주의 오름에는 봄의 자극들이 쏟아져 말 그대로 봄 자극 투성이다.

가는 길 곳곳에 봄 야생화들이 피어 반긴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을 하얀 꽃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쪼그려 앉아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 한다.

너무 작아 보이지 않 암술과 수술을 굳이 찾아 초점을 맞춰 찍어보지만 이 꽃들이 지닌 그 앙증맞음은 담아내기 힘들다.


오름을 오르는데 봄의 자극 때문인지 아니면 숲길이여서 그랬는지 유달리 새소리가 가득하다. 새소리가 이렇게 듣기 좋구나 할 무렵 가까이서 도드라지게 어여쁜 새소리가 들려와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눈을 감고 새소리를 들으니 뭔지 모를 에너지가 채워지는 느낌이다.


시작부터 꽃과 새를 알아채느라 전진이 안되길 여러 번 정상에 오르니 서쪽 오름들이 펼쳐지는 장관이 나온다. 고개를 동쪽으로 돌리니 작은 노꼬메오름과 큰노꼬메 오름이 보이고 그 뒤로 멀리 한라산이 보인다. 노꼬메오름은 삼각뿔 모양으로 다른 오름들보다 높아 피라미드와 같이 보인다. 오름들은 일견에는 참 평범해도 어느 오름이든 새롭다. 박한 돌 위에 걸터앉아 이 풍경을 보고 있자니 좋다는 생각이 밀려온다.

유달리 길다고 느꼈던 겨울 때문이었을까. 올해는 유독 봄을 진하게 느끼게 된다. 오름에서 내려와 잠시 놓인 평상 위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겨우내 그 앙상했던 나뭇가지들에 조금씩 솟아오르고 피어 나온 연한 연둣빛의 잎을 보고 있노라 햇빛을 받아 마치 반딧불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계절의 변화가 주는 신호를 알아차리고 예민하게 감지하여 즐기는데 오름만 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 오름의 여름, 가을, 겨울은 어떨지 벌써 기대가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변화를 알아차림으로 또 나의 삶은 얼마나 풍성해질지 이게 오름을 다니는 나의 이유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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