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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Apr 09. 2022

[서평] 무라카미 T

#2022-4


이름만으로도 사람에게 신뢰를 주는 사람들이 있다. 소위 네임벨류라는 것을 나는 믿는 편이다. 나에게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은 '무라카미 하루키'다.

사실 나는 소설을 즐겨 읽지는 않는데 어느 날 그의 책 서평을 읽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보다 에세이를 읽어봐야 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게 시작이었다. '소확행'으로 유명한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에세이를 읽게 되었고 그 뒤부터는 하루키 이름만 적혀 있으면 망설임 없이 책을 꺼내 들게 된다.


하루키의 에세이는 참 편안하다. 긴 문장도 미사의 어구도 없으면서 그 나름의 독특한 유희가 책 전반에 흐른다. '하루키식 유머'라고 불려도 될 만큼 책을 읽고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피식' 웃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런 매력 때문일까 그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몸도 마음도 잠시 쉰다.


한 주를 보내는 금요일 밤. 자기 전 무슨 책을 읽을까 책장 앞에 섰다가 꽂아두고 읽지 않은 그의 책을 발견했다. '무라카미 T'.  티셔츠를 수집하는 것을 즐겨하는 하루키의 이야기다.

티셔츠라는 주제만으로 이렇게 하나의 책이 나올 수 있다니 세상의 모든 것들은 글이 될 수 있음을 다시금 생각해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하루키의 에세이의 전반에 흐르는 하나의 주제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하루키는 그에게 일어나는 일들에 섣부른 판단을 잘 내리지 않는다. 어떤 일이든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해석을 해낸다. 래서일까 그의 글에는 뭔지 모를 끌어당김과 삶의 위로가 있다.



아침에 달리다 보면 종종 까마귀가 공격을 해서, 특히 아오야마 묘지를 빠져나가는 도로에서는 아슬아슬하게 저공비행하며 위협하기도 하고, 머리를 발톱으로 할퀴기도 했다. 까마귀한테 뭐 나쁜 것을 한 기억도 없고 나쁜 짓을 하겠다는 마음을 먹는 적도 없는데, 어째서 이렇게 못된 짓을 하는지 어이없기도 했다. 하지만 뭐 까마귀한테는 까마귀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p.131)


'나름의 이유가 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참 멋진 말이다. 까마귀의 얄궂은 행동에도 보일 수 있는 시크함이라니.

세상에서 일어나는 분명치 않은 일들에 이런 여유 설탕 한 조각의 말은 마음을 참 편하게 할 수 있는 것 같다.

하루를 살아가면서 만나는 수많은 선택과 만남에서 우리가 이 말을 되뇐다면 적어도 하지 못해서 후회할 일도, 잘못된 행동과 선택으로 후회할 일도 없지 않을까.


그의 글에서는 삶을 즐기는 사람의 여유가 보인다. 일흔이 넘은 나이임에도 여전히 달리기, LP 레코드판, 맥주, 책, 고양이 등을 사랑하는 그만의 라이프 스타일을 엿보는 것은 더불어 재미가 있다. 일흔이 넘는 나이에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이 확고한 모습을 엿볼 때면 나도 이렇게 나이 들면 어떨까? 그려보게 된다.

그런데 책을 읽고 난 내 머릿속에 남은 것은 여름은 서핑, 맥주는 새뮤얼 아담스, 아일랜드에서는 기네스, 위스키는 라이프로익, 시애틀의 독립서점 '엘리엇 베이북 컴퍼니, 호놀룰루 도서관의 북세일만 남아 있다. 하지만 이런 것들에 관심을 두게 된 것도 나도 모르는 나 나름의 이유가 있을지 모른다.

 

"그건 무슨 책이야? 평소랑 다르네?" 옆에서 책 읽는 것을 지켜보던 아이가 한마디 한다.

마침 부록처럼 책 뒤편 나온 티셔츠 부분을 보던 중이었다.

"응, 티셔츠 책이야."

"옷 살려고?"

"응. 옷 살려고." 대답을 해놓고는 '풋'하고 웃음이 난다.


이 책이 티셔츠에 대한 책인 만큼 다양한 종류의 티셔츠를 구경하는 것은 덤이다. 맥주, 곰, 슈퍼히어로, 하늘을 나는 것, 대학교, 동물, 책, 맥주 등등 다양한 주제로 티셔츠를 다루다 보니 어느새 읽다 보면 바로 나도 티셔츠 서너 개쯤은 당장 구입해야 할 것 같고, 이런 류의 티셔츠들을 한 번쯤은 사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따뜻해지나 싶더니 햇볕이 따갑다 느껴지는 주말 아침. 딱 티셔츠 쇼핑하기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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