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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Apr 06. 2022

[서평] 쥐

#2022-3

1992년, 만화로는 유일하게 퓰리처 상을 수상한 책으로 2차 세계대전 나치에 의한 유대인 학살을 다루고 있다. 주인공인 블라덱이 홀로코스트의 끔찍한 상황에서 살아남고 남은 생을 살아간 이야기로 저자인 아트 슈피겔만이 자신의 아버지 블라덱의 경험담을 우리에게 만화로 전한 책이다.


나치의 유대인 차별, 학살은 익히 알고 있는 부분이었지만 끔찍한 역사적 사실을 재확인하는 것은 역시나 마음이 무거운 주제였다. 인간이 인간에게 이토록 잔인할 수 있음에 다시 한번 몸서리 쳐진다. 거짓말 같은 이야기들은 알고 보아도 이러한데 이유 없이 삶을 송두리째 빼앗겨야만 했던 당시 유대인 피해자들은 어땠을지 감히 그 마음을 상상해본다는 것조차 어렵다.


이 책은 기존 나치의 유대인들의 피해자들에게 맞춰진 그간의 시각과 달리 생존자들의 입장을 생각해보게 한다. 생존자들은 그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살아남아 생을 이어갈 수 있었음에도 결국에는 트라우마로 자살을 선택하고 그 경험의 그늘에서 벗어나지를 못한다. 주인공인 블라덱만 하더라도 부인은 자살을 하고 밤마다 소리를 지르며 깨어나고 무엇이든 악착같이 모으고 아끼는 사람이 되어 일상을 살아나간다. 하지만 이런 트라우마를 겪는 아버지를 보며 아들인 아트 슈피겔만은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고 관계가 좋지 않다.


* 트라우마에 대해 다시 보기 


트라우마라는 말은 이제는 흔히 듣게 되는 말이다.  이 책은 트라우마는 무엇인지, 어떻게 극복해야 되는지,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보게 다. 트라우마가 무엇인지 찾아보면 '정신에 지속적인 영향을 주는 격렬한 감정적 충격'이라고 나온다. 지속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은 과거의 경험이 현재, 미래에도 계속 영향을 주어 힘들게 하는 것이다. 블라덱을 보면 이미 수용소 밖을 나와 다른 공간과 시간에서 살아가지만 여전히 수용소의 삶처럼 긴장과 불안에서 살아간다. 수용소에서 매번 자신의 삶을 대비하기 위해 빵을 남겨 숨겨두, 언제 쓰일지 모르는 것들을 모아두었던 것처럼 현재의 삶도 그렇게 살아간다. 트라우마라는 것은 과거의 일임에도 너무나 강력해서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뒤흔들어버리는 것이다. 살아남은 것은 기적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온전히 현재를 살 수 없음에 완전히 살아남지 못한 것이 아닐까.


과연 이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많은 연구들이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연구일 뿐 개개인의 트라우마의 경험은 전부 다를 것이다. 마음속에 들어앉은 트라우마의 덩어리는 그 누구도 재단할 수 없으며 정작 본인도 얼마만큼인지 가늠하기 힘들다. 시간에 그 상처가 무뎌질 것 같다가도 금세 이유 없이 올라오는 그런 힘듦을 겪어보지 않고는 그 누가 알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라우마의 극복은 결국에는 그 사람을 조건 없이 지지해주는 사랑하는 사람, 가족, 친구와 같은 사람이 사람에게 보여주는 사랑을 통해서 이루어져야만 하는 것 같다. 나는 블라덱이 끝내 아들에게서 어떤 이유에서인지 위안이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음이 내내 안타까웠다. 그래도 아버지의 이야기를 이렇게 세상에 꺼내 준 것이 얼마나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에게는 낱낱이 털어내어 자신의 마음속의 응어리를 풀어내고 생을 마감할 수 있었던 것은 블라덱에게는 분명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유대인 차별에 의해서 이런 트라우마를 가진 블라덱이 길거리에서 만난 흑인을 차별하는 것에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파 본 사람이 아픈 사람을 알아보는 법인데 블라덱은 아랑곳없이 다른 이유로 다른 인종을 차별하고 있었다.  과연 이게 가능한 일일까? 그저 블라덱 한 명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을 했지만 어쩌면 자신이 받은 상처를 다른 사람에게 투사하는 방어기제 일지도 모른다.


나 스스로에게도 물어보게 된다. 내가 가진 트라우마는 어떻게 나에게 자리 잡고 있는가, 나는 나의 트라우마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가? 나는 나의 트라우마의 화살을 다른 사람에게는 겨누고 있지 않는지 이 책을 읽으며 많이 돌아본다.


* 사람을 살게 하는 힘이란?


수용소안에서 블라덱 울며 지쳐 있을 때 유대인 신부를 만난다. 그때 신부는 블라덱에게 다가가 팔을 보여달라며 나치가 부여한 번호의 합에 의미를 부여해준다.


블라덱으로 하여금 무엇이 그를 그토록 살게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아마 이 장면에 답이 있지 않나 싶다.


"자넨 이 모든 걸 이기고 살아나갈 게 틀림없어!"


이 말을 믿기 시작하면서 수용소 안에서 블라덱은 생의 의지를 끄지 않고 살려냈다. 블라덱이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운이 좋아서 일 수도 있지만, 어떤 상황이 되더라도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의지를 품게 해 준 이 말이 준 힘은 무척 컸던 것으로 보인다. 블라덱의 말처럼 그 말은 블라덱에 또 하나의 새명을 불어넣어 준 생명수 같은 말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생의 의지가 있다. 실제 죽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그 이면에는 나 이렇게 힘드니 도와줘라는 내면의 말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의지를 유지하고 지켜내고자 하는 우리 모두는 일상에서 크고 작은 트라우마를 견디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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