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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Apr 12. 2022

엄마, 진짜 수고했어

13살 지구인 이야기(20)



퇴근 후 학교 후문에서 학원에 간 아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옆에서 저학년으로 보이는 여자 아이가 강아지를 안고 내리기를 여러 번 하더니 강지 뒤를 쫓아가며 안절부절못한다. 얼굴을 자세히 보니 우리 학교 2학년 아이다.


"무슨 일이니? 강아지 목줄은 어디 가고?"

"집에서 그냥 나가버려서 쫓아왔는데 데리고 가야 돼요."


하지만 이제 2학년 아이가 봄날 무단 외출한 용감한 강아지를 안고 집으로 돌아가기엔 버거워보이기만 했다. 강아지는 봄나들이라도 온 듯 신이 나 이곳저곳으로 가려고만 하고 있었다.

목줄도 없고 아이가 집으로 잘 데려갈 수 있을지 염려되어 어떡해야 할지를 고민하던 순간 갑자기 강아지가 빠르게 반대쪽으로 가버렸다. 아이는 종종걸음으로 강아지를 따라가며 강아지에게 돌아오라고 외쳤다. 순간 아이가 이렇게 강아지를 쫓아가다가 길을 잃게 될까 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학원에 간 내 아이를 만나야 했던 상황이라 계속 2학년 아이가 간 방향만을 주시하 마침 퇴근하던 다른 선생님께 아이의 집으로 연락해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그 순간 학원에 간 내 아이가 나오고 아이에게 재촉했다.


"빨리 저 쪽으로 가보자."

"왜? 엄마 학교 일이야?" 갑자기 이유도 없이 서두르는 나에게 놀란 눈으로 물었다.

"아니, 그런 건 아니야." 이유도 모르는 아이를 재촉하며 학교 울타리를 따라 빠르게 걸었다.


강아지와 아이가 간 방향을 바라보니 저 멀리 아이가 강아지를 안고 있어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고 반가운 마음에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그런데 그 순간 아이가 "네!"라고 대답하면서 강아지를 내려놓았고, 강아지는 다시 교통량이 많은 도로 건너 반대편으로 가버렸다.

이래서는 강아지도 아이도 위험할 수 있다 싶어 평소 강아지라면 질색하는 '강아지 겁쟁이'가 용기를 내어  짖어대거나 물면 어떡할까 생각할 겨를도 없이 강아지를 향해 달려가 번쩍 안았다. 생각보다 무게감이 있는 강아지를 들어 안은 채 아이에게 얼른 집으로 가자고 말하며 일단 내 차로 모두 데려갔다.


차에 앉은 나, 내 아이, 강아지와 2학년 아이는 모두 숨을 헐떡이며 숨을 고르느라 바빴다.

어제 따라 유달리 더웠던 봄날, 에어컨을 틀어 시원하게 했더니 강아지가 마치 거실에라도 있는 듯 참으로 편하게 두 발을 앞으로 뻗어 귀엽게도 앉았다. 그 모습을 보자니 나도 모르게 한숨과 웃음동시에 터져 나왔다.

잠시 쉬다가 아이의 부모님과 연락해서 집을 알아냈고 아이를 무사히 집에 데려다주었다.

"선생님 안녕히 가세요." 해맑게 웃는 아이와 아이의 할머니를 보니 마음이 편안했다.

아이와 강아지를 안전하게 데려다주고 차에 다시 타는 순간 13살 내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엄마, 진짜 고생했어."

"대단하지? 엄마 강아지 진짜 무서워하는데."

"우리 저 강아지 평생 잊지 못하겠다. 그렇지?"


나도 안다. 오늘 나 고생했다. 강아지도 무서워하는 겁쟁이가 오늘 그렇게라도 도움을 줄 수 있어 참말 다행이다. 교직에 들어선 지 22년이나 되었는데 역시 학교라는 곳은, 아이들이 보여주는 일상은 늘 같은 듯하면서도 늘 새롭다.


오늘 점심시간에 아이를 복도에서 만났다. 한 마디 인사를 건넸다.

"고로(강아지 이름)는 잘 있니?"

"네. 잘 있어요. 목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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