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점 만점에 1점
13살 지구인 이야기(22)
"엄마, 집에 보드마커 있어?"
"응. 여기. 근데 왜?" 주말 낮, 갑자기 보드마커를 찾는 아이를 궁금해서 올려다봤다.
"나에 대해서 잘 알아?" 이것은 무슨 난데없는 질문인가 싶었지만 이 녀석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이야 말로 지구에는 나뿐이라는 자신감에 큰 소리로 대답했다.
"당연하지!"
"그럼 내가 문제를 10문제 낼 테니까 맞혀봐!"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물어보니 골든벨처럼 자기가 문제를 내면 내가 답을 마커로 보드판에 쓰면 된다고 했다.
아이와 나는 거실 의자에 나란히 앉았고 아이는 자신에 대한 문제를 내기 시작했다.
"1번 문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너무 많은데?" 평소 뭐든 가리지 않고 잘 먹는 아이기에 한 가지 음식이 떠오르지 않았다.
"갈비? 힌트 좀 줘봐"
"바다에 살고 물고기야."
"바다에 사는 물고기가 한 둘이니? 힌트 더 줘봐."
"잘 생각해봐. 내가 좋아하는 거 있잖아."
"모르겠어. 초성 힌트!"
"ㅇㅇ"
"아! 연어!"
2번 문제는 아이가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 3번 문제는 아이가 싫어하는 음식.
4번 문제. "미술 빼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목은?" 화가가 꿈인 아이라서 미술을 제일 좋아하는 것을 알기에 미술을 빼고라는 조건이 붙은 문제였다.
'미술을 빼면?' 보통 고학년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목을 답했다. 체육, 수학. 연이어 내가 답한 답은 다 오답이었다.
"설마 국어?" 아이가 싫어하는 과목이라 놀리듯이 말했다.
"응. 이제는 국어가 제일 좋아."
"진짜?" 아이의 대답을 듣고 내 목소리가 한껏 올라갔다.
"너 국어 싫어했었는데..."
아이는 사실 국어를 좋아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오히려 저학년 때는 국어를 싫어했었다. 그런데 6학년이 되어서 국어 시간이 재미있다고 한다. '아... 이젠 싫어했던 국어를 좋아하는구나.'
4번까지 오는데 한 번에 맞춘 것은 싫어하는 음식 '콩' 뿐이다.
'내가 아이에 대해서 모르는 것 투성이구나.'
"엄마, 뭐 이건 힌트 없이는 맞출 수 있는 게 거의 없네." 그런 내 표정을 읽었는지 아이가 웃으며 말한다.
아이는 연신 틀리고 '힌트!' 하며 조르는 내가 웃겼던 모양이다.
"마지막 문제! 내가 제일 좋아하는 하나코 만화책은 몇 번째 책일까?"
"그건 몰라." 더 이상은 힌트를 달라고도 할 수 없는 마음이 들어 10번에는 문제를 듣자마자 힌트를 달라고 조르지도 않고 엑스표를 그었다.
아이가 낸 문제들은 자기에 대한 아주 소소한 것들이었다. 잘하는 체육 활동, 싫어하는 학교 시간, 잘하는 악기, 좋아하는 브랜드, 싫어하는 나라. 아이가 10문제를 미리 생각해두고 한 것 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는 이런 사소한 것들을 내가 다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랬다면 얼마나 알고 있다고 생각을 했을까?
아이가 자기에 대해서 잘 아냐고 했을 때 큰소리치던 엄마는 10점 만점에 1점짜리 엄마가 되었다. 아이에 대해서 엄마가 모르는 게 있을 수 있을까 했었는데 그저 내 아이를 키워온 것으로 어느 정도 아는 체하는 엄마였을 뿐이었다.
가족이라고 다 안다고 섣부르게 말할 수 없나 보다. 계절의 변화로 자연이 매일 순간순간 달라지는 것처럼 아이도 순간순간 변화하며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찬찬히 생각을 해보니 13살 아이는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어느새 변했고 자기만의 취향이라는 것을 만들어 가는 게 눈에 보인다.
'사춘기가 되어서 아이가 말을 안 해요.' 하곤 했지만 어쩌면 그 말을 핑계로 아이에게 먼저 묻지 않는 엄마가 되어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이가 물으면 귀찮아해서'라는 말로 나는 그것을 합리화했지만 아이는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을 엄마인 나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사람이 관심을 갖고 보지 않으면 세상은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아이도 관심을 갖고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게 아닐까? 조금 더 아이의 하루를, 한 달을, 일 년을 조용히 지켜보며 알아채 줘야겠다. 다음 골든벨은 10점 만점에 10점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