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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Jul 12. 2022

어쩌다, 식물

"엄마 이 화분 잘 키워줘!"

작년 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학교에서 체험 활동으로 화분을 만들었다며 아이가 가 근무하는 교무실에 화분을 두고 갔다.

퇴근할 때 집으로 들고 갈까 하다가 책상에 하나쯤 식물이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에 그대로 두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났다. 이 식물은 일 년을 나의 무관심 속에서 그렇게 자랐다. 나와 함께 컴퓨터 모니터 두 개가 내뿜는 전자파를 오롯이 받으며, 차가운 형광등 빛을 받으며, 그러다 가끔 난데없이 내가 주는 물을 받으며.


그러던 올해 봄 어느 날엔가 책상 앞에서 멍하니 있다 일 년 넘게 별 탈 없이 책상에 놓여있는 화분이 신기하기도 하고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 대해 무슨 보답이라도 해주고 싶어 볕이 잘 드는  남쪽 창가에 잠시 두었다.  늘 화분의 식물들을 관리하지 못해서 다시 한 줌의 흙으로 돌려보냈던 대단한 식물 킬러라서 죄책감이 인다.

"물 좀 잘 줘." 화분의 잎을 만져본 선배가 한 소리 했다.

"옆에 화분 하고 비교해봐. 이렇게 잎이 단단해야 되는데 흐믈흐믈 거리잖아"

잎을 만져본 적이 없는 어색한 손을 뻗어 잎을 만져보았다. 옆 화분에 비해 확실히 얇고 쳐진 느낌이다. 이 일이 시작이었다. 이 녀석도 생명인데 잘 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집으로 데리고 왔다. 아이에게 식물 이름을 물어보니 '호야'라는 식물이다. '호야' 처음 듣는 식물 이름이 낯설어 검색을 해봤다. 잘 키우면 꽃이 피기도 한다는데 피우면 행운이 온다는 믿음이 있다고 했다. 원산지가 호주인데  물을 많이 주면 되려 안 좋다고 했다. 오래전 반년을 살아본 호주에서 온 식물이라기에 괜스레 반갑다. 볕이 잘 드는 남쪽 베란다로 화분을 두었다. 빛도 바람도 충분한 이곳에서 건강하게 잘 자라기를 바랐다.

그렇게 며칠이나 지났을까 화분에 새잎이 생겨나고 잎들은 단단한 해졌다. 그동안 못했던 성장을 이때다 싶어 바쁘게 일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일 년 동안 볼 수 없었던 생명의 신비가 눈앞에 펼쳐졌다. 분홍빛을 띤 어린잎을 보니 신기하기까지 하다. 아이는 매일 식물을 죽이는 엄마가 어쩐 일로 아직까지 이렇게 잘 크게 하고 있느냐며 놀린다.

"엄마 그래서 호야 꽃은 언제 핀다는 거야?"

"그건 아무도 몰라. 꽃이 필만큼 건강해지면 피지 않을까?"

"기다리는 수밖에 없네."

"기다려도 필지 안 필지 몰라. 펴줬으면 하고 기대해보자."


사실 그냥 자연의 품에서 살아가면 가장 좋을 것을 굳이 이 작은 화분에 가두고 키우는 게 미안도 하지만 이왕 이렇게 내 앞에 놓은 식물이  이번에는 어떻게 하면 잘 자랄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보니 점점 더 마음을 쓰게 된다.

은 식물을 키우면서 식물은 무척이나 환경에 정직하다는 것, 지나친 관심은 때로는 독이 된다는 것, 물과 햇빛 토양 말고도 적당한 바람이 불어줘야 잘 자라게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어디 식물뿐일까. 우리도 환경에 늘 기민하게 반응하고, 돈이나 음식 말고도 사랑이라는 에너지바가 필요하고 지나친 관심은 독이 되지 않는가. 식물이 살아가는 모습에서 한 사람으로서 내가 할 일에 대해서 돌아보게 된다.


아침 새벽에 일어나면 남쪽으로 난 베란다로 간다.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차 한잔을 마시면서 눈앞에 있는 식물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소위 식물 멍이라고 할까. 멍하니 식물을 바라보며 어제와 다른 점이 뭐가 있는 지를 틀린 그림 찾기처럼 찾아본다.  잎의 색은 어떤지, 흙은 마르지 않았는지, 새로 나온 잎은 없는지, 벌레는 없는지 그렇게 바라보고 있노라면 정신이 맑아진다.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어느새 내게는 소중한 아침 일상이 되고 있다. 두어 달이 지난 지금 화분에 어느새 가득해진 호야의 잎이 언제쯤 분갈이를 해줄 것이냐고 매일 내게 말을 걸지만 아직 식물 초보인 나는 또 실수해서 식물을 죽이게 될까 봐 엄두를 못 내고 있다. 그래도 조만간 용기를 내봐야겠다. 내게도 이런 나만의 공간이 필요하듯 호야들에게도 각자의 공간이 필요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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