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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Jun 28. 2022

아무튼, 너는!

서로의 인생사를 모두 지켜봐 왔다고 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 가끔씩 멀어질 때도 있었지만 언제나 다시 만나면 몇 시간이고 이야기보따리를 푸는 그런 친구다. 거의 추억에 빠져 이야기 나누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가도 나면 어김없이 그땐 그랬지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맨 얼굴로 나가도, 헐렁하게 무릎이 늘어난 바지를 입고 나가도 마음이 편한 그런 친구. '이 말을 해도 될까?' 와 같은 감정 필터를 해제시켜버리는 친구. 작가 유안진이 '지란지교를 꿈꾸며'에서 이야기한 그런 친구가 내게도 있다.


친구와 서점을 함께 갔다. 온라인으로만 책을 사다가 랜만에 선반에 전시된 책들, 책꽂이에 나란히 꽂힌 책을 보니 심장이 나댄다. 온라인에서 보는 것과 달리 오프라인 서점에서는 책을 직접 느낄 수 있기에 가끔은 무생물이 아닌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새 책들이 쌓여 만들어 낸 긴 탑 같은 책장들, 책 향기, 새 책의 빳빳한 질감. 내가 생각하기엔  이 세상 수많은 네모들 중에 그중에 제일은 책이다.

"마음에 드는 책이 있어?"

"응! 이것 봐." 책이 가득한 바구니를 보여주었다.

"더 골라봐. 오늘은 전부 다 사. 내가 사줄게."

늘 마음에 드는 책을 여러 권 골랐다가도 가격을 셈하여 보고는 몇 권을 조용히 내려두었던 나라는 걸 친구는  잘 알고 있다. 그런 친구이기에 이 말이 괜히 고맙고 미안했지만 이번에는 조용히 친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정말 그래도 돼?"

"응. 그냥 읽고 싶은 거 다사." 자기는 쉬고 있겠노라고 충분히 책을 고를 나만의 시간의 시간을 준다.


책을 고르다가 시간이 길어지는 것 같아서 눈으로 친구를 찾았다. 어디 있나 보았더니 평소 문구류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친구가 웬일인지 서점 입구에 있는 문구류 코너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뭔가 마음에 드는 게 있나 보다 했다. 그런데  책을 다 고르고 계산대로 가는 길. 친구가 손을 잡아끌며 문구류 코너로 데리고 간다.

"여기 이런 거 필요하지 않아?" 친구가 인덱스 플래그를 가리키며 말했다.  

"너 이런 거 잘 쓰잖아. 이것도 하나 골라봐."

"아무튼 너는!"

사실 책을 읽으면서 밑줄을 그을 때도 있지만 인덱스 플래그를 마음에 드는 문장 옆에 붙이거나 그 옆에 메모를 남기는 용도로 자주 쓴다. 책 한 권을 읽고 나면 책 옆으로 형형색색의 플래그가 붙어 있다. 그걸 친구가 눈여겨보았던 모양이다. 그런 사소한 것도 기억해주는 친구가 고마워서 선뜻 고른다 만다를 말할 수 없어서 고개를 숙였다. 멈칫하고 있자 친구가 계속 골라보라며 재촉한다.

"어떤 게 마음에 들어?"

사실 평소 사용하는 평범한 인덱스 플래그가 아닌 독특한 플래그들이어서 눈이 갔다. 하나를 만지작 거리자 친구가 재빨리 책 바구니 안으로 넣고는 계산대로 간다.

그저 고맙고 미안해서 그런 친구를 지켜봤다. 그런 마음을 읽었는지 웃으며 한마디 건넨다.

"작가님! 이거 다 투자야. 나중에 잘되면 다 내 덕분이다."


더 열심히 살고 더 잘하고 싶고 더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가족도 아님에도 가족처럼 든든한 지지를 해주는 사람들. 나는 너를 언제든 도와줄 준비가 되어 있다고 신호를 보내주는 사람들.

내가 가진 게 별로 없구나 싶다가도 이런 사람들이 옆에 있음을 깨달으면 마음이 부자가 된다. 언제쯤이면 이들에게 진 마음의 빚을 갚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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