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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Jun 29. 2022

잘 알아볼 수 있도록

13살 지구인 이야기(33)

"엄마, 내일은 화려한 색깔 옷을 입어야겠어. 뭐 입지?"

아이의 말이 여름에 눈이 왔다는 소리처럼 생뚱맞게 들린다. 학교에서 6학년 아이들은 주로 검은색과 흰색의 옷을 입는다. 교실에 들어가 보면 대부분 검은색이고 드문드문 흰색과 회색을 입고 있는 아이들이 보인다. 이유는 모르지만 무채색을 선호하게 되는 6학년 아이들. 내 아이 역시 그런 색깔의 옷이 대부분이다. 그런 6학년인 아이가 내일은 어쩐 일인지 화려한 색깔의 옷을 입겠다고 하니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니?"

"내일 농구할 때 내가 슛 했는데 다른 아이가 슛한 것으로 보이면 안 되잖아."

"내가 좋아하는 아이가 잘 알아볼 수 있도록"

무슨 말인가 생각해보니 지난번 아이가 좋아하는 아이가 있다고 했을 때 툭 던졌던 내 말이 떠올랐다.

여자들은 운동을 잘하는 남자를 대부분 좋아한다는 말이었다. 공으로 하는 거의 모든 운동 특히 피구, 발야구, 농구를 아이가 잘하니 그런 거 반에서 할 때 더 열심히 해서 멋진 모습을 자주 보여주라는 나의 연애 특훈(?)이었다. 그 말을 기억했는지 내일 있는 학교 농구 수업 시간에 아이가 좋아하는 여자 아이 앞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가 보다.


아침이 되어서 아무 옷이나 입던 아이는 옷을 고르고 또 골랐다. 운동하기 편한 새로 산 반바지 위에 제법 화려한 프린팅이 된 하얀 옷을 입고 가는 아이가 학교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다. 다른 때 보다 오늘은 아이의 슛이 농구대의 그물망을 시원하게 가르고 들어가 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쉬는 시간이 되어 운동장을 내다보니 아이가 보이지 않는다. 농구 시간만 되면 총알같이 달려 나가는 아이를 본 적이 있는지라 학급에 없는 아이가 신경 쓰였다. 그런데 그 찰나 복도에서 아이를 만났다.

"다쳤어." 하면서 왼쪽 무릎을 보여주고는 휘리릭 다시 운동장으로 달려 나간다.

이런 중요한 날에 다치다니. 내 무릎이 아파온다. 그래도 달려 운동장으로 나가는 것을 보니 크게 아프지는 않은 모양이니 다행이다.


아이를 보며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사랑은 에너지와 생기를 주는 것 같다. 나를 위해 더 힘쓰게 하는 에너지를 주고,  밋밋한 하루를 기대하게 해 준다. 애쓰다 보니 어느새 근사한 내가 되고 기대를 하다 보니 하루가 재미있어진다. 누군가에 잘 보이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이 어느새 자기를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고 있다는 걸 아이는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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