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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Jul 03. 2022

에어컨! 고마워

13살 지구인 이야기(34)

여름이 오나 싶더니 한여름 더위가 찾아온 지난 주말. 습한 날씨에 못 견디겠어 에어컨을 켰다. 바람이 얼굴을 때린다. 이제 곧 시원해지겠지?라는 기대감이 곧 불안으로 바뀐다. 시원한 바람이 나오지 않고 선풍기 바람 같은 송풍이 나온다. 인터넷으로 여러 방법을 검색하고 서비스센터와 상담을 하고 다양한 시도를 해봐도 시원하지 않은 후덥지근한 바람뿐이다. 결국 서비스 예약을 위해 접수를 하니 무려 18일 뒤에야 방문 서비스가 가능하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2주 이상을 이 더위에서 버텨야 하는 미션이 떨어졌다.

비가 연일 내린다는 타 지역과 달리 내가 있는 곳은 연일 폭염이다. 30도가 넘는 날씨에 바닷가 옆인 집이라 높은 습도에 며칠 전부터 알 수 없는 강이 불어 창문을 열어도 바람이 고르지 않고 난데없이 훅 들어오고 나가기를 여러 번 더위에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다.


며칠간의 더위에 지친 아이와 나.

"저녁이나 먹고 갈래?" 안 그래도 더운데 불 앞에서 요리할 자신이 없어 저녁 외식을 하기로 했다.

동네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데 사장님이 틀어놓은 뉴스에서 갑자기 흘러나오는 아나운서의 고성에 가까운 소리에 둘이 눈이 커진다. 뉴스 아나운서의 콘셉트 같아 보였지만 연거푸 버럭 모드로 진행해서 아이도 나도 신기한 듯 쳐다보다 동시에 웃었다. 우리가 몰랐던 작은 세상 구경이었다.


저녁을 먹고 새로 생긴 동네 서점 나들이를 했다. 아직 책이 다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동네에 제법 큰 서점이 생겨서 반가웠다. 아이가 한참을 둘러보다가 문제지로 코너로 가더니 나에게 다가와 말한다.

"엄마, 나도 수학 기본 말고 어려운 수준 책 하나 사서 풀어봐도 될까?"

"뭐든 해보고 싶은 거 있으면 해 봐."

아이는 서점에서 2학기 수학 문제지와 좋아하는 해리포터 책을 샀다.

집으로 가려다 시원한 게 마시고 싶어 근처 커피숍으로 갔다.

아이는 에이드, 나는 아이스 라테를 한잔 시키고 나는 책을 읽고, 아이는 새로 산 문제지를 살펴보다가 급기야 풀기 시작했다.

커피숍에서 책 읽는 엄마와 문제지 푸는 아이. 아이가 크니 이런 낯선 경험도 해본다. 낯설지만 함께 하는 이 낯이 좋다.


"엄마 우리 여기 자주 올까? 일주일에 2번 정도."

"그래. 주말에도 오고 주중에 힘들 때 한 번씩 오자." 

에어컨 고장 덕분에 아이와 일주일에 2번이나 동네 커피숍, 서점 데이트를 할 수 있는 골든티켓을 얻었다.


아이가 크면서 함께 외출하는 일이 많이 줄어버렸다. 집보다는 이것저것 세상 구경 좋아하는 엄마 따라 어릴 적에는 많이도 다녔는데 이제는 집 근처 바다가 보이는 카페라도 가자고 하면 이모랑 가면 안돼? 꼭 오늘 나랑 가고 싶어? 안 가면 안돼? 와 같은 13살 스운 답이 돌아온다.

아이와 함께 어딘가를 다닌다는 것은 소소하지만 작은 추억을 나눠 갖는 것이었다. 아이는 기억도 못할 추억이 몸과 마음에 새겨져 서로를 살게 하는 장작이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에어컨이 고장 나준 덕분에 오랜만에 아이와 보낸 평일 저녁이 어쩐지 감사하다.


 "엄마, 오늘은 나갔다 왔으니 글 쓸거리가 생겼지?" 샤워하고 나오더니 무심한 듯 한마디 던지고 방으로 들어간다. 


글 쓸 거리가 생기 다마다. 너와 함께 하는 하루는 매일 다르고 특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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