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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Jul 10. 2022

서른둘의 제자

나는 미용실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그냥 한번 가면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야 되기 때문에 늘 나올 때면 머리카락은 생기를 띄고 나는 생기를 잃는다. 한번 가면 머리카락을 자르고 파마까지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긴 시간이 이어진다. 그래서 책을 가지고 가고 꼭 커피를 마시며 그 긴 시간을 버틴다.

"커피 한잔 마실 수 있을까요?"

"코로나로 아직은 제공되지 않고 있어요."

아뿔싸. 카페인 수혈이 필요했지만 어쩔 수 없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미용실 입구로 한 남자가 들어온다. 30대로 보이는 남자의 얼굴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그 남자의 손이 들고 있는 커피가 눈에 들어온다. 그것도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아... 저거 한잔 마셨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 남자가 내가 앉은자리 옆으로 오더니 그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건넨다.

커피를 받으면서 처음에 나는 그분이 미용실 직원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선생님, 저 기억하세요?"

"저 초등학교 때 선생님 제자예요."

제자라고 하기에는 너무 어른이다. 늘 초등학교 아이들과 지내다 보니 내 나이를 잊고 산다.

학부모님이라고 해도 될 어른이 제자라고 하니 뭔가 어색하고 낯설다

"이름이 뭐니?" 혹시나 내가 실수하게 될지도 몰라 먼저 이름을 물었다.

이름을 들으니 생각이 났다. 20년 전 새내기 교사였을 때 우리 반 아이다. 6학년 11반!

어린 얼굴로 기억을 하고 있기에 제자의 얼굴을 빤히 보면서 어릴 적 얼굴을 맞춰나간다.

"어떻게 알아봤니? 선생님 그때보다 늙었는데."

"하나도 안 변하셨어요."

제자는 나보다 먼저 그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맞은편 대각선으로 앉은 내가 선생님 같았단다.

마스크를 끼고 있던 참이라 얼굴을 알아봐 준 아이가 신기하고 고마웠다.

아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저 만나서 반가웠다로만 끝나기에는 아이와 말하는 동안 그 시절 제자의 모습이 우리 반 모습이 하나씩 풍선 터지듯 떠올랐다.

"너 그때 컵스카우트하지 않았니?"

"네 맞아요"

"5학년 때는 5반이었고. ***선생님 반이었지?"

6학년 때 우리 반이지만 5학년 때는 옆반이었던 것이 기억이 났고, 당시 학교 업무로 3년 동안 아이들을 데리고 야영을 같이 많이도 다녔던 기억이 생각이 났다. 제자는 나의 수다스러운 질문들에 연신 웃음으로 답한다.

미용사가 머리를 하고 있는지는 의식하지도 않은 채 몇 분이 흘렀을까.

"너 연락처 줄래?"

"선생님 연락처 줄테니까 다음에 연락하자."

그렇게 20년 전 제자와의 만남은 끝이 났다. 그렇게 제자가 나가고 나서 제자가 사다 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커피가 몸을 타고 흐르면서 만난 제자 말고도 그때 아이들이 하나둘 씩 떠올랐다. 42명의 아이들. 이젠 누군가의 아내로, 누군가의 남편으로, 혹은 누군가의 아빠로, 어느 곳에서든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제자들.

하지만 아직도 내게는 여전히 그 어릴 적 모습으로 박제되어 있다.

잠시지만 잘 커 준 제자가 나의 안부를 물어주고 다른 친구들의 안부까지 전해 정말 고마웠다.


오늘 만난 제자를 가르쳤던 나는 25살이었다. 어느새 시간이 흘러 그때의 내 나이보다 더 나이가 든 제자를 만났다.

돌이켜보면 갓 교직에 들어섰던 나는 무척 모자란 교사였을 것이다. 20년 전 어리숙하고 부족한 것 투성이었을 나를 기억해 준 것도 모자라  이 더운 여름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건네 그 시절로 돌아가게 해준  덕분에 오늘은 마음이 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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