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스스로에게 민망하리만큼 어리석고 유치한 기분이나 감정이 드는 그런 날이 있다. 재밌게 놀다가도 친한 친구에게까지 모난 말을 해버리고 투벅투벅 걸어서 집에가는데 그 길이 유달리 멀게 느껴지는 날. 그렇게 유달리 치기가 많은 날이면 집으로 혼자 돌아오는 길 가끔 연락을 하게 되는 후배가 하나 있다.
"자냐?"라는 무미건조한 톡에 먹으면서 찍어둔 맥주 사진을 하나 보냈다. 답이 왔다. 와인잔도 아닌 와인병이 찍힌 사진에 왜 자기를 빼고 마셨냐고 한다.
그냥 그렇게 되었노라고 속상한 일이 있어 한잔 마셨다고 했더니 30분이면 간다며 집으로 온다고 한다. 30분 뒤면 평일 11시. 늦었으니 들어가라고 했더니 굳이 만나야 된다고 성화다.
결국 내일 만나기로 협상(?)을 하고 대화는 끝이 났고 서로 굿나잇을 했다.
이 후배와 톡을 하는데 한걸음에 달려오겠다는 후배의 열정(?)에 기분이 다 풀려버렸다. 평소에는 진중하다가도 술만 마시면 원더우먼이 되는 후배. 그 생동감과 에너지가 난 참 좋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녀석은 내게 무리해주는 몇 안 되는 사람이다. 늘 남을 위해 무리하며 사는 게 도리어 편한 내게 기꺼이 무리해주는 고마운 사람.
무리하다는 말을 찾아보면 정도에서 벗어나 지나친 것이라고 한다. 좀 지나치면 어떠랴. 난 내 후배나 몇 안 되는 지인들이 내게 보여주는 흘러넘치는 지나침이 좋다. 나를 아끼는 사람들, 나를 위해 기꺼이 무리해주는 사람들 속에 살고 싶고 나 또한 그들에게 펑펑 무리하며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