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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Jul 28. 2022

그냥 안아줘!

13살 지구인 이야기(37)


"엄마, 안아줘!"

13살이 된 아이가 요즘 부쩍 안아달라는 소리를 많이 한다. 이제는 160이 다 되어가는 키에 나보다도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아이가 시도 때도 없이 안아달란다. 집으로 돌아오는 엘리베이터에서도 안아달라고 하고,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안아달라고 한다. 그런데 적당한 토닥임 정도로 안아주는 것은 또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더 꽉!"을 외친다. 정말 영화에서 헤어지기 싫은 연인들이 눈물을 흘리며 껴안듯이 부둥켜 안아야 만족해한다. 그렇게 온몸에 체중을 실어 안아주고 나면 뭐가 좋은지 씩 웃고 간다.


작년까지는 내가 갖은 애교를 써가며 안아달라고 해도 잘 안아주지 않더니 신기할 뿐이다. 그런데 이 안아달라고 하는 시기가 공교롭게도 내가 한창 밥할 때, 겨우 집중해서 책을 읽을 때, 오래간만에 대청소를 할 때, 금방 밖에서 들어와 땀이 흐를 때와 같이 딱 내가 뭔가 바로 안아주기는 어색한 시간일 때가 많다. 그래서 "잠깐만", "다음에"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왜 안아주지 않는 거야?" 아이는 인내심이 폭발하면 꼭 툴툴댄다. 그러면 나는 이제까지 너를 키우면서 충분히 안아주었노라며 자신 있게 말한다.

"엄마가 어릴 때 너 너무 많이 안아줘서? 엄청 많이 안아줬잖아!"

"그런가? 한 일억 번?" 아이가 일억 번이라는 숫자를 내뱉는 순간 서로 웃음이 터진다.

아이는 생각해보면 어릴 적부터 안아주는 것을 좋아했다. 아기띠나 힙시트 같은 것을 차고 안으면 싫어하고 반드시 내가 내 손으로 엉덩이를 받고 안아줘야 좋아했다. 비싼 아기띠와 힙시트는 결국 거의 새것인 채로 후배에게 나눔을 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우는 아이를 달래는 방법은 딱 하나였다. 조금이라도 아이가 울면 바로 달려가서 안았다. 아이가 넘어져서 다치든, 아이가 아파서 울든, 아이가 슬퍼서 울든, 아이가 새벽녘에 배가 고파서 울든 빛의 속도로 달려가서 그저 안고만 있도 아이는 에너지가 금세 채워지는 것처럼 바로 눈물을 멈추곤 했다. 그래서 후배들이나 친구들이 아이 달래는 게 힘들다고 하면 힘들다고 하지 말고 그저 안아주라고 했었다.


아마 아이는 그 기억들이 몸속에 들어가 새겨져 있는 모양이다.

"도대체 왜 이렇게 자주 안아달라는 거야? 내가 그렇게 좋아?"

"그냥 안아줘. 엄마를 안으면 그냥 따뜻해."


살다 보면 이유 없이 마음이 허기가 지는 날이 있다. 아마 아이가 요즘 들어 부쩍 안아달라고 하는 것은 그런 마음의 허기가 아닐까. 분명 갑자기 엄마가 너무 사랑스러워져서가 아닐 것이다. 사춘기 호르몬의 영향으로 어딘지 불안하고 사랑을 더 채워놓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그런 것이다. 어릴 적 아이가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번개처럼 달려가 안아주었던 것처럼 오늘은 "엄마, 그만 안아줘." 할 때까지 아무 이유 없이 그냥 더 꽈악 안아줘야겠다.


작가 백영옥은 <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에서 가장 큰 위로는 말이 아니라 함께한 많은 '그냥'들로 증명된다고 했다. 아 말처럼 그냥 안아줘 가 아이에겐 가장 큰 위로가 되나 보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아이의 나이에 맞게 다른 과업들이 부모에게 오는 것 같다. 다 컸다고 하는 순간 다시 아이를 위해 생각해야 할 것들이 하나씩 는다. 마치 계단을 오르는 느낌이다. 아이가 크는 만큼 부모도 성장해야 하는 이유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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