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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Aug 29. 2022

제주 토박이로 산다는 것

"육지 사람이야?"

제주도에 살고 있으면 '제주도 사람?' 아니다. 마흔이 넘은 나 같은 제주 토박이들은 자신들처럼 제주에서 나고 자란 사람 말고는 전부 육지사람이라고 한다. 그렇게 부르기로 약속된 것도 아닌데 제주에서 나고 자란 사람 아니면 제주에서 10년을 살았어도 전부 다 육지 사람이다. 지인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육지'는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에서나 들어본 단어라며 웃는다. 그런 육지 사람들인 지인들이 제주도에 올 때 꼭 물어본다.


"제주에 가면 어디 가면 좋아? 관광지나 맛집 같은 거 말이야."


뭐라도 대답을 해줘야 할 것 같아서 이곳저곳 가본 곳들을 이야기 해주곤 한다. 하지만 그걸 아는가 제주도 사람들도 한라산이나 오름 같은 자연환경을 제외하고는 인터넷 검색을 하고 식당을 추천하거나 가본다는 것을. 오히려 인터넷을 검색해보다 이런 것들은 언제 생겼느냐며 혼자 놀라게 된다.


내가 나고 자란 제주가 이리 생소할 수가 없다. 분위기 좋은 카페는 왜 이리 많은 것이며, 맛집이라고 소개되는 식당은 또 왜 이리 많은 것인지. 그런데 실상 그런 곳을 찾아가 보면 대부분 관광 온 육지사람들 전용인 듯하다. 실제 토박이들은 많이 가지 않은 카페나 식당이 많다. 일단은 그런 곳들이 인구밀도가 낮은 읍면지역에 위치해 있어서 그렇기도 하고 일상식으로 많이 먹지 않는 음식을 메뉴로 해서 그렇기도 하다. 대체로 진짜 제주 토박이들은 식당에 가서 고등어조림, 갈치조림, 옥돔구이 등을 자주 사 먹지는 않는다.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가기보다는 쉽게 갈 수 있고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거주지 주변 프랜차이즈 커피숍을 더 많이 이용한다.

인스타에 보이는 그런 카페는 도민들도 주말에나 일부러 찾아가는 곳들이다. 어느 순간 제주는 관광객을 위한 식당과 카페가 많이 생겼다. 한라산이나 바다가 보이는 위치 좋은 곳에는 꼭 새로운 카페나 식당이 들어서고 주인들이 육지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덕분에 커피를 좋아하는 나는 가려고만 하면 언제든지 뷰가 좋은 카페쯤은 리스트를 만들어 놓고 갈 수 있다. 커피 좋아하는 제주사람들은 한라산이나 바다가 훤히 보이는 단골 카페 하나쯤은 다 가지고 있을 것이다. 육지 사람들의 유입으로 제주는 조금 더 다양화되고 생기가 넘치고 있는 게 분명하다.


하지만 이제는 가끔 동네에 마음에 쏙 드는 맛을 내는 식당이 생기면 '여기는 인스타에 뜨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실제로 맘 편하게 슬리퍼를 끌고 가던 식당은 이제는 웨이팅 없이는 먹을 수 없는 해장국집, 국숫집, 고깃집이 되고야 말았다.

"이제는 여기 못 오겠다." 뭔가 내 공간을 빼앗겨 버린 기분이라 한숨이 나오며 돌아선다. 친하게 지내오던 옆집 친구가 갑자기 연예인이나 유명인이 되어서 맘 편히 볼 수도 아는 체할 수도 없는 그런 기분이다.


작년부터 집 근처 우연히 바다가 보이는 동네길을 찾아 걷기 시작했다. 워낙 외진 곳에 있어서 혼자 가기도 무서운 그런 길이지만 해 질 녘 풍경에 잠시 삶의 시름을 내려놓기 좋은 곳이라 자주 걷는다. 석양빛을 받아 반짝이는 잔물결은 뇌를 잠시 쉬게 해 준다. 그런 바다 옆에 작은 외진 커피숍에서 사장님이 진하게 내려주는 디카페인 커피를 한잔 마시고 집에 오면 지친 하루 쓰러져 누워 있는 내게 누가 이불을 덮어주는 느낌이다.

제주 토박이로 산다는 것. 제주의 일부분은 나만의 공간으로 조용히 남겨두고 싶어 여기저기 발걸음을 내딛는 여행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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