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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Sep 12. 2022

심장이 닮았어

13살 지구인 이야기(50)

"엄마 저 왔어요."

추석 날 오랜만에 본가에 들어서며 엄마를 찾았다. 어머니라는 말보다는 아직도 엄마라는 말이 더 편하다.

내가 앞서고 아이가 뒤를 따라 걸어 들어가는데 우리를 보고 있는 집 식구들 눈이 커진다.

"이야~ 왜 이렇게 컸어!" 할아버지의 외마디 외침을 시작으로 설 이후로 오랜만에 아이를 본 가족들은 왜 이렇게 키가 컸냐며 입을 모아 아이에게 관심을 비처럼 쏟아부었다. 내 동생은 아이와 키재기를 하며 이러다 외삼촌보다도 키가 금세 커버리겠다며 한마디 한다.


아이가 훌쩍 자란 모습은 부모님이 보기에도 대견하고 신기한 모양이었다. 인사를 나누고 함께 밥을 먹는 자리에서도 아이만 쳐다보며 언제 이렇게 컸냐며 보고 또 본다.

"그런데 얼굴이 클수록 아빠를 꼭 닮았네." 아이의 얼굴을 한참 보던 엄마의 혼잣말이 탄식처럼 나왔다.

"완전 아빠랑 붕어빵죠?" 했더니 아이가 밥을 먹다가 입을 막고 웃는다.


아이는 정말 아이 아빠와 많이 닮았다. 얼굴을 빼고서도 도톰한 손과 넓적한 발, 남들보다 통통한 뼈, 큰 귀까지 첫눈에도 그 아빠의 그 아들이다. 어릴 적부터 아이에게 넌 엄마보다 아빠를 닮았노라고 이야기를 하면 아이 자기가 보기에도 그런 것 같다며 스스로 아빠를 닮은 아이라고 했다.

아이가 7살쯤이었던 것 같다. 너무 아빠의 모습만을 닮아서 엄마는 속상하다고 장난을 친 적이 있었다.

"엄마는 네가 엄마도 많이 닮았으면 했는데 하나도 안 닮았어." 토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의 아쉬운 소리에 그 어렸던 아이가 내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얼굴은 아빠지만 심장은 엄마를 닮았어."

"심장이 닮아?"

"심장! 마음! 내 마음은 엄마를 닮았어."

"휴... 진짜 다행이다. 그건 아빠를 닮으면 안 돼." 아이와 나는 이 말을 하며 한바탕 웃었다.

그렇게 그날부터 우리 사이에서 아이는 얼굴 아빠, 심장은 엄마 닮은 것으로 하기로 정리를 했다.


심장이 닮았다. 지금 돌이켜보아도 멋진 아이의 대답이다. 사실 심장에 마음이 담긴다는 말을 언젠가 책에서 본 적이 있다. 심장이식 수술을 받은 환자 중에는 이식 후 전혀 다른 성격의 사람이 된 사례들이 실제 있다고 한다. 외모가 안 닮으면 어떤가. 그런데 외모야 별 노력 없이도 유전자의 힘으로 발현이 된다지만 심장은 좀 난감하다. 아이가 내 심장을 닮았다는데 내가 더 건강하고 따뜻한 심장을 지녀야 할 것 같은 책임감이 든다. 그런데 아이와 함께 한 시간. 나는 내 심장이 아이 덕분에 조금 더 따뜻해지고 건강해졌다는 것을 잘 안다. 부모와 아이라는 관계를 넘어 사람 대 사람으로 누군가 나에게 보여주는 무한한 신뢰와 사랑은 더 멋진 심장을 갖게 하는 일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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