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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Sep 12. 2022

다시 농구!

 좋은 버릇인 것은 알지만 주말이나 저녁에 느긋하게 식사를 할 때면 나는  종종 책을 읽는다. 이 시간에는 무거운 책 보다 온라인 서점의 정기 잡지책, 가벼운 에세이 같은 것들을 읽곤 한다. 어떤 책을 읽을까 다가 아이가 옆에 둔 슬램덩크 만화책을 들었다. 혼자만 보면 아이가 심심해할까 봐 두 권을 골라 아이에게 내밀었다.

"어느 거 볼래?"

"난 이거." 아이가 먼저 책을 고르고 남은 책 한 권을 보려는데 아이가 그 책보다는 다른 책이 재미있다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엄마, 슬램덩크는 13권이 최고야. 능남전 결말을 봐야 돼."라고 말하면서 자기 방으로 가서 13권을 들고 나왔다.

그렇게 아이도 나도 각자의 슬램덩크 만화책에 빠져 읽기를 한참. 나도 모르게 읽다가 깔깔 웃어대니 아이가 눈이 커지면서 엄마가 웃으면서 책 보는 것은 처음 본다면 신기해했다. 그 뒤로도 여러 번 강백호와 서태웅의 신경전과 능남감독에게 겁 없이 말을 건네는 강백호의 근거 없는 용기에 웃음이 계속 끝이지 않는다.


"엄마 그렇게 재미있어? 13권 짱이지?"

"응. 잠깐만 이제 결론이 날 순간이야." 나도 모르게 만화책에 푹 빠져 침을 꼴깍 삼키게 된다.

종이에 그려진 만화일 뿐인데 이토록 긴장감을 주다니. 작가의 힘이 이런 것이구나 싶다.


남은 시간은 58초. 공은 능남의 공이다. 공이 윤대협에게 가자 윤대협이 서태웅과 채치수를 제치고 골을 성공시킨다.

'아... 역시 윤대협이다.' 알고도 당한다는 것은 이런 느낌일 것이다.

스코어는 66 대 68. 남은 시간은 38초. 이번에 어설프게 공격해서 실패하면 승부를 장담할 수 없다. 숨 막히는 순간 12초를 남겨놓고 채치수가 변덕규를 앞에 두고 슛을 날려보지만 링에서 튕겨 나온다. 잠시 능남 벤치에서 환호가 나오는 순간 링 앞으로 강백호가 솟아오르고 그대로 덩크슛을 성공시고 66 대 70으로 북산이 승리한다.

그 순간 왜 내가 슛을 성공시킨 것 마냥 심장이 뛰어대고 눈물이 솟아오르는 것인가. 언제 읽어도 슬램덩크는 명작이다. 당연히 북산이 능남한테 이길 거라는 것을 알고 읽어도 마흔 훌쩍 넘은 아줌마는 여전히 결말에 설렌다.

"14권 어디 있어?" 벅차오르는 가슴을 누르며 다음 책을 찾는다.

 

사실 슬램덩크는 내가 이제까지 읽은 유일한 만화책이다. 중학교 시절 오빠와 남동생이 빌려온 책을 옆에서 같이 읽었던 책. 새로 리커버 된 판으로 농구를 좋아하는 아이에게 농구를 알려면 슬램덩크를 읽어야 한다며 억지로 읽게 한 책이다. 슬램덩크 덕분에 농구를 알게 되었고, 농구가 좋아졌고, 농구대잔치와 연고전을 응원하며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던 시절을 지나 어른이 되었다. 그때 그 시절로 다시 데려단 준 슬램덩크!

이렇게 다시 농구가 내게로 다.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아이가 불쑥 끼어든다.

"엄마 우리 17,18권도 사자. 산왕 전도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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