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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Sep 14. 2022

가끔은 다르게

사람마다 자기가 애정 하는 공간이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제주의 서남쪽 끝에 위한 송악산이 그렇다. 날이 좋아 볕이 남쪽 창가로 진하게 들어오는 날이면 얼른 챙겨서 다녀오고 싶은 곳이다. 제주시에서도 평화로를 타면 40분이면 도착하는 송악산. 이곳은 울창한 숲길은 기대하기 힘든 오름 중 하나지만 남쪽으로는 날이 좋으면 보이는 가파도, 마라도. 동쪽으로는 산방산과 박수기정, 무엇보다 삼면으로 바다가 보이는 곳이라서 마음이 어지러운 날 햇볕을 받으며 송악산 둘레를 한 바퀴 돌고 오면 개운하기 그지없는 곳이다. 그만큼 내게는 추억할 것들이 가득 쌓여있는 공간이다.


연휴에 비연일 내리나 싶더니 다행히 제주의 서쪽은 날이 좋았다. 햇빛을 찾아가는 사냥꾼처럼 송악산은 날이 좋기를 바라며 다녀왔다. 연휴인지라 관광버스와 렌터카들이 그득한 송악산 초입에 주차를 하기 힘들어 외진 곳에 세우고 보니 입구와 거리가 멀고 둘레길이 끝나는 출구와 더 가깝다. 핑계에 어디로든 길 연결될 테니 안 가던 출구로 가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호기로움이 일었다.

거꾸로 가니 살짝 어지다는 기분이 든다. 우르르 내려오는 사람들의 무리 속에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나의 모습이 다소 모나 보인다. '굳이 입구를 두고 출구로 걸어 들어오는 저 여자는 뭐야?' 하는 눈초리가 느껴진다.

그렇게 꿋꿋이 오르다 보니 어느 순간 멈춰 서서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된다. '내가 오르던 그 송악산이 맞나?' 싶은 착각이 일었다. 자주 오던 곳인데 걷는 길의 느낌이 사뭇 다르다. 반대방향으로 걷다 보니 그동안 정방향으로 올 때는 보지 못했던 풍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날이 좋아서 저 멀리 가파도와 마라도가 차례대로 눈에 들어왔고 사람들이 앉아서 쉬는 전망대 옆 불안해 보이는 송이로 된 절벽이 눈에 띈다. 조금만 힘이 가해지면 툭 하고 어쩐지 무너져 내릴 것 같다. '저런 절벽이 여기 있었구나.' 한참을 그렇게 가다 보니 독특한 지층들이 보인다. 어떻게 저렇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며 눈이 간다.

"이건 찍어야 돼. 4학년 과학에 지층과 화석 단원 나와" 이 말을 듣고 친구는 직업병이라며 놀리지만 이보다 좋은 사진 자료가 어디 있으랴. 제주의 해안가에는 이리도 많은 천연의 학습장이 펼쳐진다.

거꾸로 보니 그동안 그리 자주 갔음에도 보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가끔은 거꾸로, 익숙지 않은 길을 따라가는 것이 주는 발견의 기쁨이라는 것이 있는가 보다. 사실 올해는 개인적으로 뭔가 변하고 싶어서 그동안 나를 만들던 것들과 결별하는 중이다. 늘 먹던  음식 말고 다른 음식, 늘 가던 카페 말고 안 가본 카페, 늘 읽던 종류의 책들 말고 다른 종류의 책들, 늘 입던 옷 말고 다른 스타일의 옷, 늘 가던 오름 말고 다른 오름.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 삶의 경험치를 조금은 다양하게 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를 다르게 대하다 보니 어느새 조금은 더  내가 되어가고 있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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