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의 끝

13살 지구인 이야기(48)

by 도토리

아이는 게임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정말 잘한다. 어릴 적부터 게임을 좋아하던 아빠를 보며 자란 탓인지 몸속 게임 유전자 덕분인지 게임을 했다 하면 게임의 엔딩 자막을 보고야 만다. 게임에도 끝이 있구나 하는 것을 아이가 게임하는 것을 보면서 알았다.

아이는 핸드폰 게임도 하지만 집에 있는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을 더 즐겨한다. 이 게임들은 오프닝도 요란하지만 엔딩은 전장에서 승리한 장군을 환영하듯 찬란하다. 그 엔딩 장면이 주는 기쁨 덕분이었는지 아이는 엔딩 자막이 올라오면 나보고 이것 보라며 하루 종일 구름 위를 걷듯이 신이 나 했고 사진을 찍어달라며 말하곤 했다.


올해 아이는 드래곤퀘스트라는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캐릭터들이 여행을 떠나면서 단계를 깨나가는 그런 게임이다.

"엄마 이 녀석이 마지막인데 천하무적이야."

나를 불러 가보니 50인치 화면 가득 큰 눈망울 두 개를 가진 캐릭터가 놓여있다.

"저렇게 귀여운 아이가 왕이라고?"

"잘 봐. 조금 기다리면 저 녀석이 어떻게 되는지."

아이 말을 듣고 숨죽이며 기다리는데 갑자기 귀여운 눈망울을 가진 캐릭터가 양쪽 팔을 펴더니 악의 기운이 철철 넘치는 거대한 캐릭터로 변신하며 온몸을 휘두르며 아이의 캐릭터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가열차게 그 공격에 맞서며 오른쪽 왼쪽 위아래 공격을 하던 아이의 캐릭터는 패배하고 게임은 끝났다.

여러 차례 그 왕에게 공격당한 아이는 게임을 끄면서도 '이 녀석을 어떻게 이기지?'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그러기를 몇 날 며칠, 외출 후 집으로 들어간 나에게 아이가 힘없이 말했다.

"엄마 드디어 왕을 깼어." 왕을 이긴 목소리라기보다는 오히려 왕을 깨지 못한 듯한 기운 없는 말투다.

"왕을 깼는데 왜 목소리가 그래?" 게임하다가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염려가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정말 뜻밖이었다.

"좋은데, 왕을 깨니 어쩐지 허전하고 아쉽네."

아이의 말에 따르면 게임의 엔딩을 보면 다시 처음부터 새로 시작해야 한다고 한다.

"다시 처음부터 해서 또 깨면 되지."

"그럴까?" 그 뒤로 아이는 그 게임을 다시 시작하고 있지만 그 큰 눈망울의 왕을 깨고 싶어 하던 간절함은 이미 사라진 것 같다.

온 마음을 쏟아 어떻게 하면 왕을 물리칠지 고민하고 설레고 아슬아슬하던 줄타기를 즐기던 아이가 느낀 마지막 감정은 허전함인 듯했다.


아이처럼 목표가 달성되고 난 뒤는 잠시의 기쁨이 있고 결국 그 시간을 그리워하게 되나 보다. 어떤 성취나 행운에 의해서 행복을 느끼는 기간은 사실 오래지 않다고 한다. 일례로 원하던 대학에 합격이나 복권에 당첨되어도 몇 개월 뒤면 그 행복감은 사라진단다.

행복은 어떤 일이라기보다는 어떤 일에 대해 내가 느끼는 행복한 감기에 그 감정은 이렇게 잠시 잠깐 우리에게 기분 좋음을 주고 다시 사라지는 것인가 보다. 아마 삶은 이렇게 잠깐의 행복을 찾고 행복감을 느끼며 다시 행복을 찾아가며 살아가는 연속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