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토리 Oct 07. 2022

[서평] 작별인사

#2022-8

'철이가 휴머노이드라고?'

책을 읽다가 하마터면 소리를 낼 뻔했다. 그는 인간처럼 생각하고 궁금해하고 의식이 있으며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최박사는 인간다운 마음을 가진 휴머노이드를 만들고자 철이를 만들었다. 그리고 철이는 인간 같은 휴머노이드임에도 결국 자신의 영생을 포기하고 죽음을 택했다. 그를 그런 선택에 이르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감정이 있는 존재만이 결정을 내릴 수 있는데 프로그램으로 움직이는 철이는 어떻게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선이와 민이를 만나며 감정을 교류하고, 소설과 음악을 매개체로 인류가 만들어 놓은 다양한 군상의 모습과 삶의 모습을 이해하면서 감정을 가지게 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책에서 선이는 철이에게 오직 인간만이 호기심과 욕망, 신을 가지고 다른 세계를 탐험하고 그들과 교류하는 것이라고 했다. 감정이 있는 존재만이 결정을 내린다면 감정 없는 선택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일까? <작별인사>는 인간이 가진 고유성, 삶과 죽음에 대해서 때로는 철이와 선이와 대화로, 철이와 달마와의 대사로 우리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들에 답을 찾아가다 보면 소설책인지 철학책인지 헷갈리기까지 한다.  

 

몇 해 전 유행했던 드라마 <도깨비>에서 등장인물 김신은 영생을 살면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맞이하는 벌을 받는다. 평생을 늙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데 왜 그게 벌일까 싶었지만 그에게 주어진 벌은 가혹하기만 했다. 주변 사람들이 생을 다해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고 남은 자신은 그 아픔을 그대로 간직하고 누적하며 살아간다. 그 고통을 없애는 방법은 결국 죽음으로 돌아가는 방법뿐. 그는 죽음을 간절히 원했다. 그때 처음으로 생의 유한함이 인간에는 신이 준 선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작별인사>의 철이는 휴머노이드로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영생을 살 수도 있었지만 결국에는 죽음을 택한 철이는 남겨진 자의 기약 없는 고통을 예견했을지도 모른다.


모든 이야기에는 시작도 있지만 끝이 반드시 있다. 끝이 없는 이야기를 우리는 감히 읽을 용기를 낼 수 있을까? 끝이 없는 이야기라면 우리는 그렇게 집중해서 읽어 내려갈 수 있을까?

이야기의 끝이 있어 우리에게 읽어 내려갈 힘을 주듯이, 삶도 끝이 있어 우리에게 이 생을 조금이라도 가열하게 살아갈 에너지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주의 한낱 티끌에서 운이 좋아서 이 지구의 한 생명체로 살아갈 수 있는 특권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 기적과 유한한 시간 속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생각해보게 된다. 매 순간마다 나를 의식하며 자신의 존재에 감사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선이처럼 더 나은 존재가 되도록 부단히 노력하고 우주의 원리를 더 깊이 깨우치려 애쓰는 게 찰나의 순간에 삶을 사는 내가 할 일이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이 험난한 시련을 이겨내면 우리는 그 책 한 권이 주는 감동을 안고 당분간 버틸 수 있는 힘을 받는다. 각자의 이야기가 지구라는 공간에서 선하게 펼쳐지고 울림을 줄 때, 이 세계는 우주적 관점에서 다시 선순환이 펼쳐지는 것 같다. 나는 내 작은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그렇지만 진지하게 써 내려가려고 한다. 유한한 생이 주는 감사하며 더 많이 자연에 찬탄하고, 더 많이 세상을 알아가고, 더 많이 인류가 만들어 놓은 문화를 즐기면서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내가 검토하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