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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Oct 08. 2022

엄마, 눈치 보지 마

13살  지구인 이야기(55)

며칠 뒤 다가오는 아이의 생일을 맞아 서울 나들이를 왔다. 아침부터 흐리고 비가 오던 제주 날씨와 달리 서울은 끝에 서늘하게 느껴지는 공기 맑고 높은 하늘이 딱 가을다.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올라왔던 터라 브런치로 청계천 근처에 식사를 하려는데 가게 오픈이 30분 남아 청계천 산책을 했다.

"엄마, 저기 앉아보자"

청계천의 흐르는 물을 바라보며 앉아있는데 물 흐르는 소리 도시의 적당한 소음 만들어 내는 소리가 한데 섞여 뚜벅이 여행자의 마음에 쉼표를 주었다.

그렇게 둘이 나란히 계단에 앉아 물을 바라보고 있는데 아이가 주변에 떨어진 나뭇잎 하나를 주워와서는 흐르는 물에 띄워 보낸다. 

잔잔한 물을 따라  흘러가는 모양이 신기했는지 아이는 여러 번 나뭇잎을 물에 띄웠다.

어릴 적부터 어디를 데려가도 돌, 나뭇가지, 흙을 가지고 참 재밌게 잘 노는 아이다. 그  모습에 어릴 적 모습이 보여 또 그렇게 한참을 아이를 넋 놓고 바라보았다.


"엄마 나랑 대결할래?"

각자 나뭇잎을 하나 주워와서 물에 띄우고 누구의 것이 빨리 나가는지 보자고 했다.

어떤 잎은 유속이 빠른 곳에 떨어져 쏜살같이 흘러가고 어떤 잎은 가장자리에 떨어져 천천히 가다 돌에 붙어서 나가지를 못하기도 했다. 물의 흐름과 그 위에 떠 있는 나뭇잎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우리 인생의 한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시간은 앞으로 계속 흐르고 그 흐름 속에서 각자 다른 속도로 나아가다 어쩔 때는  돌부리에 멈추기도 하고 물의 흐름을 타 앞서 나가고.


사실 지난 한 주 어쩐 일인지 내일도 아닌 일들이 연이어 내게 넘어올 뻔했었다. 거절이라는 것을 두세 번 하면서 마음이 여러 차례 불편했었다.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고 왜 힘들다고 하는 사람에게서는 일을 빼주고 조용히 일하는 사람들은 그 일까지 떠맡아야 되는지 이해가 안 됐다. 나는 나의 속도대로 조금 천천히 여유 있게 가고 싶은데 그게 뜻대로는 되지 않는 한 주였다. 그래서 였을까 나도 모르게 탄식처럼 밑도 끝도 없는 말이 나왔다.

"엄마는 다른 사람 도와주는 게 복 쌓는 일이라고 생각해. 다른 누군가가 내 아이도 이렇게 도와주겠지 하고." 

이 말을 듣고 아이의 얼굴이 굳어지더니 한소리 했다. 아이의 단호한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엄마 이제까지 복 많이 쌓았으니까 눈치 보고 살지마."

아이말대로 복을 쌓기만 하지 말고 쌓은 복도 좀 쓰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은 남보다 나를 더 생각하기! 서울 나들이 첫날  이의 말이 내내 잊히지 않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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