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토리 Sep 27. 2022

마흔이 된 후에

13살 지구인 이야기(53)

"엄마 책에 그런 책 있더라? 마흔이 되기 전 뭐 그런 책."

무슨 말인가 했더니 3-4년 전 사서 안방 앞 책꽂이에 꽂아둔 '마흔이 되기 전에'라는 책을 말하는 것 같았다.

"마흔이 되기 전에?" 몇 년 전 베스트셀러에도 올랐던 팀 페리스의 유명한 책 중 하나가 떠올랐다.

"맞아! 그런 거 읽지 마."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아이가 어른인 내게 금서를 지정해주다니!

"왜 읽으면 안 되는데?" 난생처음 느껴지는 아이의 잔소리에 미간이 찌푸려진다. 그것도 내가 고른 책에 대해서 읽지 말라니!

"보면 후회하게 되잖아. 마흔이 되기 전에 이거 했어야 했는데 하고."

아이의 말을 가만히 생각해 보니 마흔이 넘어서 어떻게 할 수 없는데 이제 와서 후회하게 만드는 책은 내 기분을 우울하게 할 수 있으니 읽지 말라는 의미였다. 겨우 13살 아이가 엄마 기분까지 챙기려 들다니. 녀석은 분명 지구인이 아닐지도 모른다.

"엄마 후회하는 거 없어. 걱정 마."

아이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유쾌한 목소리로 아이에게 웃으며 말했다.

책을 살 때 이제는 아이가 걱정 안 할 제목을 가진 책을 사야되나 내 얼굴에 설핏 웃음이 인다.


후회되는 거 없다고 아이에게는 큰소리치고 돌아섰지만 아이와의 대화를 마치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마흔이 되기 전은 커녕 마흔이 훌쩍 넘은 나는 내 마흔 전의 무엇을 후회할까? 마흔이 되기 전에 진즉에 내가 알아서 행동해야 했던 것들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본다.

사실 후회할 것이 왜 없으랴. 내 과거는 실수 투성이고 후회 투성이다. 사람을 무턱대고 믿었었고, 나보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더 배려했었다. 불편한 회의 분위기가 싫어서 누군가 일을 해야했다면 내가 했었고, 돈을 빌려줘도 달라는 말을 못 해 손해 보기 일쑤였다. 다 같이 짜장면을 먹으면 나는 짬뽕을 먹고 싶어도 짜장면이라고 말하던 나. 후회라는 단어를 떠올리니 아이 말처럼 검은 구름들이 온몸을 감싸기 시작한다. 괜찮은 척, 잘 지내는 척, 안 힘든 척 살아온 내가 참 안타깝다.


하지만 그런 모습도 나이기에 잠깐 낯빛이 뜨거워지는 부끄러움 말고는 괜찮다. 이런 어리석은 행동들도 해보고 깨달아보기를 마흔 전에 해서 얼마나 다행인가. 안 해보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해보고 후회하는 것이 그래도 한 생을 살면서 해볼 만한 것이 아닐까. 후회 없는 삶이란 없을 것이기에 많이 해보고 적게 후회할 일을 만드는 걸 내 '마흔이 된 후에' 삶으로 만들 것이다.

더 많이 부딪히고, 더 많이 도전하고, 더 희로애락을 깊게 느끼고, 자연에 찬탄하면서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작은 행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