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토리 Sep 26. 2022

작은 행복

올해 5학년 아이들 과학 수업을 담당하고 있다. 같은 수업을 하루에 이어서 5번쯤 하고 나면 의도치 않은 업그레이드를 거치며 책을 펴지 않고도 수업하게 되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마지막 반 수업은 육체적 피로감이 제일 심하다. 특히 실험이 유달리 많은 단원이 있으면 실험 도구 정리와 과학실 정리까지 더해져서 몸이 물먹은 스펀지가 되고는 한다. 그렇게 늦은 점심을 먹고 나면 하루가 다 가버린 느낌마저 든다.


오늘은 아이들과 계절별 날씨에 대해서 배우고 간단한 만들기 활동을 했다. 오려 붙여서 하는 활동이 있었던 터라 바닥에 떨어진 작은 조각들은 빗자루로 쓸어도 잘 쓸어지지도 않는다.

"선생님 도와 드릴까요?" 과학 수업 후 이어지는 점심시간에 늦지 않게 서둘러서 보내려고 하는데 아이 몇몇이 남아서 정리를 돕겠다고 했다.

"그럼 모둠별로 바구니만 앞으로 가져다 줄래?"

그렇게 아이들은 가고 바닥을 쓴 후에 앞으로 와보니 아이들이 '문구점에 왔나?'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정리를 하고 갔다. 가위는 가위대로, 풀은 풀대로, 색연필과 사인펜은 한데 모아서 참 가지런히도 정리했다.

5개 반 아이들이 사용할 때 어지러워졌던 바구니의 모습을 알고 있는 터라 이건 거의 변신 수준의 정리다. 자잘한 종이 조각들을 일일이 손으로 꺼내고, 케이스에 네임펜, 사인펜을 정리하고 풀 뚜껑을 닫고 종류별로 열을 맞추어 정리한 것이다. 그 마음씀을 느끼 아이들이 보여준 배려에 오후의 피로는 사르르 사라진다. 아이들이 정리를 해준대로 조교 선생님께 실험 도구를 가져다 드리니 선생님 또한 깜짝 놀라신다. 굳이 시키지도 않은 일을 이렇게 해내는 아이들의 마음은 무엇일까. 아이에게 물어볼 시간조차 없었으니 아이의 마음을 모르긴 하지만 그래도 바빠 보이는 나를 돕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라고 조심스레 추측한다.


아이들이 보여준 귀여운 마음이, 생각지 못한 그 순함이 게는 따뜻한 마음을 일으키는 발열장치 같다. 학교라는 곳에서 아이들이 교사에게 사랑을 받고 교사들이 아이들에게서 사랑받는 이런 작은 행복의 시간들이 조금씩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선생님 때문에'라는 원망보다는 '선생님 덕분에' '너 때문에'가 아닌 ' 너 덕분에' 학교에서 배울 맛 학교에서 가르칠 맛이 나는 것은 이런 작은 행복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학교라는 공간은 늘 사랑이 서로에게 가닿을 때 더 아름다워지는 런 공간 까닭이다.




작가의 이전글 글감 사냥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