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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Oct 01. 2022

마음의 힘, 목소리

나는 어릴 적 내 목소리가 참으로 싫었다. 오빠와 남동생 틈에서 공놀이를 하고 비비탄 과녁으로 살았던 탓일까? 늘 또래 여자 아이들보다 강하게 행동했고 신발도 분홍색보다는 남색이나 파란색들어간 운동화를 고르곤 했다. 예쁘게 말하기보다는 말이 늘 짧았고 목소리는 컸다. 게다가 성격상 남에게 의지하기보다는 혼자서 뭐든 해결했던 터라 누군가에게 응석을 부리거나 코맹맹이 소리로 애교를 부린다는 것은 해본 적이 없이 자랐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저녁 늦게까지 동생이 들어오지 않아 데리러 놀이터에 갔을 때 동생에게 집에 가자고 큰 소리로 부른 적이 있었다.

"남자야? 여자야?" 옆에서 듣던 또래 남자아이의 말에 창피했다. 그날 나는 처음 알았다. 남들에게 내 목소리는 남자 목소리처럼 크고 예쁜 목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그 이후로 내 목소리는 안 좋다는 생각이 늘 머릿속에 자리 잡았고 콤플렉스가 되었다. 늘 옥구슬 굴러가는 듯 친구들의 예쁜 목소리를 들으면 '아.. 저런 목소리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며 나도 모르게 부러움을 표현하곤 했다.

"너 진짜 목소리 좋다."

사실 지금도 누군가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들으면 남자 여자를 떠나서 한번 더 고개를 돌려 쳐다보게 된다.

'저 사람은 목소리가 참 좋구나.' 그렇게 좋은 목소리는 내겐 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어디를 가서 발표를 하거나 진행을 할 일이 종종 생기더니 끝나면 사람들이 목소리가 너무 좋다며 칭찬을 해줬다. 그 칭찬은 이전에는 받아보지 못한 칭찬이어서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늘 얼떨떨하기만 했다. 그러다 작년부터 매달 마이크를 잡고 회의를 진행할 일이 있었고 회의는 무사히 끝났다. 그런데  어느 날 뒤에서 학교 어른들이 뒤에서 나를 불렀다.

"직업을 잘 못 택한 교사가 여기 또 한 명 있네."

"네?"

"교사보다는 아나운서를 해야 했어!"

"목소리가 참 듣기 좋아."

"마이크가 좋은 게 아닐까요?" 겸연쩍어 우스갯소리처럼 답을 했지만 참 듣기 좋은 칭찬이었다.

다른 칭찬도 아닌 내가 자라오면서 늘 느꼈던 목소리에 대한 콤플렉스를 이겨낼 만큼 과한 칭찬들을 받으니 싫기만 했던 내 목소리가 다르게 느껴졌다.


내 목소리가 좋아질 리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말을 매일 하면서 사는 교사라는 직업을 가졌으니 그 누구보다 목소리를 낼 일이 많아 사실 더 안 좋아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나이 마흔이 훌쩍 넘어 목소리가 좋다고 칭찬을 받게 된 것은 어떤 이유일까? 늘 궁금하던 차에 책에서 답을 찾았다.


"예기, 악기 편에 의하면 무릇 소리란 사람의 마음을 거쳐서 생긴다 했습니다. 대체로 대단히 귀하고 아주 장수하는 사람의 목소리는 큰 종이 우렁차게 울리듯 소리를 낸다 하니, 더러는 음악의 표준음에 맞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열하일기 2, 돌베개,  P.321-


 소리는 마음을 거쳐서 생긴다는 문장을 만나니 어디선가 읽었던 그 사람의 목소리는 그 사람의 마음의 힘이라는 글귀를 떠올리게 된다. 내 마음의 힘이 조금은 커져서 좋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그동안 내가 겪었던 수많은 일들, 만났던 많은 사람들로 인해서 느꼈던 희로애락이 내게 더 단단한 마음을 가지게 한 것 같다.  내가 아는 것을 드러내는 목소리가 아닌, 조금 더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서 이야기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조금 삼키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가 될 말은 하지 않으려고 마음의 체를 사용하면서 내 입으로 나오는 소리가 조금은 남들에게 듣기 좋은 목소리가 되는 것은 아닐까? 오늘도 나는 내 좋은 목소리를 위해 마음을 가다듬고 또 가다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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