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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Oct 03. 2022

고양이와 물고기

저녁에 시간이 나면 집 근처 바닷길을 따라 가끔 걷는다. 걷다 보면 작은 포구가 하나 나오는데 잠시 거기에서 바다를 보며 이런저런 일상을 친구와 나눈다. 어떤 이유로 만들어 놓은지도 모르는 바다로 이어지는 계단에 앉아 있었는데 옆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걸어온다. 비탈진 포구 벽을 따라 걸어오는데 불안해 보인다. 그런데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보며 한발 한발 가까이 다가온다.

"이 녀석은 겁도 없네." 함께 있던 친구도 놀랬는지 고양이를 한참 쳐다본다. 이 근처에 야생 고양이들이 많아 그중 한 마리겠하고 생각했다. 경사진 돌 위를 유유히 걸어오던 고양이는 나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 쓰윽 한번 보더니  계단 벽을 순식간에 타고 반대쪽으로 건너갔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요란한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온다.

"어머, 지금 고양이가 생선을 물고 가는 거야?" 산책을 하던 아주머니목소리가 들린다.

"세상에." 다른 한 분이 더 큰 목소리로 외친다.

뒤를 돌아보니 내 등 뒤로 그 고양이가 작은 생선을 입에 야무지게 물고 지나간다. 흡사 포구를 런어웨이 삼아 걷는 것처럼 여유와 자신감이 넘친다. 그 어디에도 먹이를 빼앗길 것 같은 조바심이나 불안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물고기 물고 가는 고양이 처음 보냐는 눈빛으로 쓰윽 쳐다보더니 천천히 걸어가버렸다. 극강의 시크함과 도도함에 감히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을 생각도 못했지만 글을 쓰는 지금도 그 당당한 모습이 내 머릿속에 박혀있다.


"고양이가 정말 물고기를 먹기도 하는구나."

고양이가 그 어두운 바다에서 사냥을 했을 리는 없고 아마 낚시꾼들이 잡았는데 너무 작아서 놓아주려던 물고기를 고양이가 가지고 가는 것 같다고 친구는 말했다.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다'와 같은 속담이 있는 것을 보면 고양이와 물고기는 원래 잘 맞는 짝꿍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날 생선을 입에 물고 가는 모습이 그토록 어색하고 낯설게 느껴졌다.


고양이의 본능은 내가 생각했던 것,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당차고 매력적이었다. 따뜻한 집에서 배려심 있는 주인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는 고양이는 아닐지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본능을 잊지 않고 하루하루 충실히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는 고양이를 나는 안타깝다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이날 그 고양이가 진짜 고양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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