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준비하는데 갑자기 핸드폰이 요란하게 여러 차례 울린다. 확인을 하니 별 관찰 앱에서 오늘 개기월식이 있다는 알람이다.다른 때와 달리 알람이 연거푸 들어와서 이건 보통 이벤트가 아니구나 싶었다.
급하게 아이의 농구클럽에 데리러 가는 길. 하늘을 올려다봤다. 동쪽 하늘에 달이 떴는데 이미 월식이 시작되고 있었다. 마침 탁 트인 공간에 있었을 때라 지나가는 사람도 없어 마음 놓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신기했다. 이전에는 소원을 빌기도 했었는데 어쩐 일인지 어제는 정말 멍하니 달만 바라보았다. 달을 보면 변하는 늑대인간이라도 될 것처럼 달의 기운이 내 머릿속 생각들을 가라앉혀 뇌가 정지한 기분이 들었다. 카메라를 꺼내 30배쯤으로 확대를 하니 달의 크리에이터가 선명히 보인다. 안구건조증을 동반한 침침한 내 눈으로 보던 달과는 또 다른 달 세계였다. 점점 월식이 진행될수록 경이로웠다. 자연이 무료로 주는 선물을 관람하고 있자니 세상의 모든 일어나는 일들이 신비롭게 느껴지고 일상의 번잡함은 사소해 보인다.
농구를 끝낸 아이와 만나 아이에게 달을 보여주었다.아이도 신기한 듯 하늘을 보며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달이 지구 그림자에 가려지고 그 달의 그림자에 천왕성도 가려진대."
"다음에 이런 현상은 앞으로 200년 뒤에나 있대. 엄마 생에서는 마지막. 아 너도 그렇겠구나"
아이 앞에서 과학 선생님 엄마는 또 선생님 버릇이 나와 아는 걸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고 한다.
사람들은 왜 하늘에서 일어나는 천문현상에 감탄하게 될까. 늘 똑같은 패턴으로 반복되는 하늘이 어느 날엔가 별안간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서 일지 모른다. 변함없이 밝게 떠 있는 달이 오늘처럼 사라졌다가 붉어지더니 다시 밝게 빛나다니 우주가 보여주는 마법쇼임이 틀림없다. 사람들이 하늘의 달과 별을 당연시 여기기에 어쩌다 이렇게 '나 여기 이렇게 잘 있어요'라고 알려주는 것은 아닐까.
매일 행복할 순 없어도 매일 행복한 일이 있다는 말처럼 내게는 세상의 치기가 심했던 어제, 우주가 보여준 행복한 일을 관람할 수 있는 지구인이어서 그래도 버틸만했다.역시 엉망이라고 생각한 날도 행복한 일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