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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Nov 10. 2022

15년 만의 병가

새벽부터 란한 천둥번개 소리에 깼다. 그렇게 깨곤 쉬이 잠들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지 아침에 일어날 때부터 '오늘 출근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건조해진 눈은 인공눈물을 넣어도 금세 말라버려 깜박일 때마다 마른땅이 갈라지는 것처럼 느껴졌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통증이 찾아오는 등에서는 묵직하고 찌릿한 통증이 이어졌다. 새벽녘에 치던 천둥과 번개를 온몸으로 맞은 듯하다. 내 몸이 그 기운에 다 타버린 것만 같다.


억지스럽게 몸을 일으켜 근을 하는 중에 계속 증상이 심해졌다. 이를 학교에 먼저 내려주고 차에서 눈을 감았다. 선택의 순간이 왔다. 하필이면 오늘은 수업이 꽉 찬 하루다. 이게 선택을 어렵게 했다. 그러다 문득 병가를 언제 써봤나 헤아려보니 15년  기억이 났다. 그게 처음이고 마지막이었다. 15년 만에 병가니 한 번쯤은 써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니 용기가 났다. 그렇게 병가를 윗분들에게 말씀드리고 같은 학교 친한 후배에게 수업 때문에 연락을 했다. 마음 가까운 후배여서 그랬는지 목소리를 듣자마자 눈물이 울컥 올라온다.

사정을 설명하고 있는데 후배가 언니 지금 우냐고 깜짝 놀란다. 아파서 그런다고 얼버무렸는데 건조한 눈을 뚫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루 종일 누워 쉬면서 이건 몸의 병의 아니라 마음의 병인가 싶다. 뭐하러 이렇게 살아가나 현타가 와버린 것 같다.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학교 안이라는 공간에서 여러 가지  큰 역할을 맡으며  살아왔다. 어쩌다 일 잘하는 교사가 되었다. 10년 동안 그런 일을 하면서 깨달은 것은 일을 잘하면 일이 더 온다는 부조리와 희생이 그리 보람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안에 내 의지가 있었을까? 가르치는 일이라는 교사 본연의 일로 돌아가고 싶은 밤이다. 우리 반이라는 공간에서 알콩달 아이들의 마음에 가닿으며 책도 읽어주고 볕이 좋은 날이나 눈이 오는 날은 창밖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런 일이 그리워진다.


심장에 날이 잔뜩 서버린 지난 며칠이었다. 그 며칠 나의 날카로워진 마음들을 동글동글하게 해 준 지인들이 있기에 다행이다.

"무슨 일 있어?" 실은 이 아픈 게 아니라 마음이 아팠노라고 토하듯이 말하게 해 준 그들의 인내가 아픈 나를 치료한다. 다시 한번 느낀다.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는 역시 다른 사람으로 치유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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