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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Dec 27. 2022

그렇다면 이거네!

13살 지구인 이야기(79)

일하는 엄마로 산다는 것은 어쩌면 내가 얼마나 부지런할 수 있는지와 게으를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요즘은 나의 게으름을 매일 확인하고 있다. 겨울이 되니 날도 추워지고 해는 짧아지니 제때 쓰레기를 버려야지 하다가도 못 본 척하게 된다. 며칠 전부터 버리려고 모아둔 쓰레기들이 이제는 제발 좀 바깥으로 버려달라는 신호를 보낸다. 마침 아이와 외출을 하려고 나서려던 참이라 두 개의 쓰레기봉투를 단단히 묶고 현관문 앞에 두었다.


"엄마랑 나가면서 쓰레기봉투 하나씩 들고나가자." 신발을 신고 있는 아이에게 부탁을 했다.

"어떤 거 들면 돼?"

"앞에는 무거운 거야. 뒤에는 가벼운 거고."

"그렇다면 이거네!" 아이는 무거운 쓰레기봉투를 번쩍 들고 문을 열고 나갔다. '어? 이게 아닌데?' 아이에게 가벼운 봉투를 들게 하고 무거운 것은 내가 들고 나가려던 참이라 방금 벌어진 일에 어리둥절하다.

아이를 쫓아 나가보니 아이는 무거운 것을 들고 아무렇지 않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안 무거워? 가벼운 거 들래?"

"엄마보다 내가 이젠 더 힘세." 내듯이 눈을 내리깔며 나를 보며 장난을 다.

쓰레기를 버리러 가면서 곁눈질로 아이를 보니 봉투가 무겁긴 한 모양이지만 한 손으로 봉투를 야무지게 잡고 가는 것을 보니 믿음직스럽다.


"오늘 엄마 너 덕분에 기분이 좋았어. 이유는 비밀." 잠을 자려고 누운 아이에게 말했다.

아이는 난데없는 내 말에 스무고개라도 하듯이 언제? 왜?라고 질문을 하며 이유를 알아내려고 한다. 초성힌트를 말해주었더니 "아! 쓰레기?" 하며 웃기만 한다.


누군가 도와주는 게 늘 어색한 나지만 아이가 이렇게 도와주는 순간만큼은 그저 행복하다. 매일 똑같은 듯한 하루. 왜 이렇게 빨리 가나 싶고 이유 없는 편두통에 머리가 지끈거리지만 아이가 주는 이런 일상의 스냅샷이 나에게는 쉼을 주는 복된 시간이다. 아이가 계속 이렇게 자라주었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알고 그 사람을 위해 선뜻 시간과 에너지를 내어줄 수 있는 따뜻한 사람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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