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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Jan 05. 2023

함부로 헤어질 수 없는 정

#2023-5

이번 달 이사를 준비하고 있어 연일 집에 있는 물건들을 정리하고 있다. 버릴 것과 버리지 않을 것을 구분해두는 정도지만 품이 많이 든다. 그중 제일 많이 정리하고 있는 것들이 책이다. 여러 해 책장에 꽂혀 있기만 했던 책들은 책등이 빛바래져 있기도 하고 책 위로 먼지가 앉아있기도 하다. 특히 페이퍼백으로 된 원서들은 가장자리가 누렇게 되어 지나온 시절들을 그대로 보여준다. 먼지를 털어내 안을 펼쳐보면 그 책이 내게로 왔던 그 시절로 잠시 돌아가게 된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갔다가 정리를 멈추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바로 며칠 전 일도 기억 못 하는데 어찌 그 시절 기억들은 이리도 선명한지 모를 일이다.

오전에 시간을 내어 아이가 유치원 다닐 즈음 영어를 자연스럽게 접하게 하고 싶어 읽어주었던 영어그림책을 정리했다. 그 책들 중에 유달리 사용감이 많은 책들이 보인다. 구겨진 자국도 있고 낡아서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 기억나?" 옆에 있던 아이에게 책을 내밀었다.
"당연하지. 그 책 영어 노래 끝나지 않을 것처럼 계속 이어지잖아."
아이랑 그림책을 보고 나서  노래로 나오는 음원을 틀어놓고 같이 불렀었는데 아이도 기억하고 있었다.
괜히 흥이 나서 그 노래를 흥얼거리니 아이도 같이 부르기 시작다. 오늘도 책정리는 이렇게 진척이 없다.

오래된 책들은 과감하게 버려야 되는데 자꾸만 망설여지는 것은 그 책들 안에 아이와 나의 추억이 저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애정하는 것들에는 함부로 헤어질 수 없는 정이 스며드는 게 분명하다.

약속이 있어 혼자 외출을 나서는 길. 아이에게 어릴 적 했던 인사말을 던졌다.
"See you later!"
아이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잽싸게 받아준다.
"Alligator! "

그 시절 보았던 책 중 하나를 읽고 어릴 적 아이랑 나눴던 영어 인사법이다. 오랜만에 아이와 나 사이에 추억이란 끈이 팽팽히 잡아당겨지는 느낌이다. 아이와 책을 읽는다는 것은 추억을 저장하는 것과 동의어 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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