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토리 Jun 21. 2021

노을

내 생의 길섶에서 만난 행운(1)

해지는 광경에서 하늘이 햇빛을 받아 붉게 보이는 현상을 노을이라고 한다. 나는 해지는 광경과 함께 노을이라는 말 자체가 참 좋다. '노을'을 소리 내어 발음해보면 '을'이라는 글자에서 앞에 놓여있던 혀가 목구멍으로 말아 들어간다. 마치 내 혀가 해가 되어 목구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나는 것이 왠지 조음학적으로도 딱 일치되는 멋진 단어라고 생각한다면 조금 과장일까.


요즘 거의 매일 같은 장소를 가지만 매일 다른 노을을 본다. 같은 장소에서 보는 같은 방향, 같은 크기의 해일지인데 매일마다 노을의 풍경은 다르다. 

매일의 하늘과 바다의 색이 다르고, 구름의 양과 모양, 태양 빛의 색깔, 빛의 양이 어우러져 다르게 느껴진다.

거기에다가 바다에 떠있는 고기잡이 배의 수와 고기잡이 배에서 나오는 빛까지 더해져서 똑같은 주인공이 나오는 연극의 매일 다른 연출을 보는 느낌이 든다.

 

오늘은 집 앞 도로변에서 우연히 참 크고도 아름다운 저녁 해를 만났다. 

뭐가 그리 큰지 보는 순간 아름다운 모습에 감탄이 일고 내가 지구가 아닌 수성쯤에 있어서 이렇게 큰 해를 볼 수 있나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더 멋지게 가까이서 보고 싶어서 서둘러 차를 타고 늘 보던 곳으로 가는 중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그 크고 고운 해는 어디 있었냐는 듯 순식간에 자취를 감춰버렸다. 

'이렇게 빨리 지나?' 궁금해서 찾아보니 지구에서 해가 지는 시간이 불과 2분 남짓이란다.

친구와 아쉬움에 "차라리 거기 앞에서 그냥 볼걸."아쉬워하며 늘 보던 그 해안가 자리에 멈춰 서서 하늘을 보았다. 비록 해는 지평선 아래로 들어가 버렸지만 주변 하늘은 오늘따라 많은 다양한 모양의 구름들과 어울려 장관을 만들어 내주었다.

"바다도 빨갛게 물들어 보이네."

하늘만 바라보고 있던 나는 친구의 말에 바다를 보았다. 노을 밑 바다도 친구 말대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해 질 녘 모든 사물이 붉게 물들고, 저 언덕 너머로 다가오는 실루엣이 내가 기르던 개인지, 나를 해치러 오는 늑대인지 분간할 수 없는 시간이라고 해서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한단다. 낮도 밤도 아닌 모호한 시간의 경계, 날이 어둑어둑해지면서 사물의 윤곽이 희미해지는 시간에 나는 오늘도 신이 길섶에 숨겨놓은 이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것을 선물 받았다. 

오래도록 함께 해 온 친구와 앞으로도 이런 광경을 오래도록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7:1 영상 통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