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읽는다는 것, 특히 소설을 읽는다는 것이 우리가 직접 경험할 수도 있는 다양한 상황을 미리 경험함으로써 백신을 맞는 것이라고 한다면 '마지막 이야기 전달자'는 우리의 미래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볼 기회를 주는 책이다.
혜성 충돌로 지구가 사라진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사실 없다. 사라질 지구에 남아 종말을 맞이할 사람들과 다른 행성을 찾아 살아갈 기회를 얻게 되는 소수의 선택된 사람들. 이 책은 선택받은 자들이 지구를 떠난 그 이후의 삶을 계속 이어가려 한다고 전제하면서 시작된다. 과연 인간은 지구 이외에 행성을 찾아서 살아갈 수 있을까? 살아간다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지구의 많은 것들을 뒤로한 채 떠나는 그들은 행복할 수 있을까? 행성 이주에 대한 여러 가지 모습들을 상상하며 단숨에 읽어 나가게 된다. 그러면서도 눈앞에 그려지는 듯한 서술과 묘사로 이 책은 우리를 상상의 세계로 몰입하게 한다.
이 이야기에 나온 '콜렉티브'의 사상이 내게는 무척 흥미로웠다. 인간이 만든 불일치와 불평등이 인간을 불안과 불행으로 이끌었다는 말, 우리의 과거와 상처는 우리로 비롯되었다는 말에는 공감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똑같은 모습을 하고 똑같이 살아간다는 것이 과연 이상적일까? 모든 것을 평등하게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모든 차별적 요소를 제거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싶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무섭기까지 했다. 문화, 지식, 외모까지 다 같아야 한다니. 인간의 역사는 불평등의 역사라고는 하지만 다양하게 모인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사회에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며 살아가며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나가며 살아가는 것이 더 인간다운 것은 아날까 생각해 봤다. 주인공 페트라의 아빠가 콜렉티브의 모습을 보며 평등과 일치는 각기 다른 것이라고 한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일치로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 수 없다.
콜렉티브는 우주선의 모든 사람들의 기억을 지워버렸다.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일치라는 콜렉티브의 이상을 향해 그저 존재할 뿐이었다. 자신의 이름도 기억도 잃어버린 그들은 수단에 불과하지만 페트라는 기억을 잃지 않았다. 할머니처럼 이야기 전달자가 되고 싶어 하던 페트라는 이야기 전달자가 되어 새로운 행성 세이건에서 지구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마지막 이야기 전달자가 결국 되고 만다.
이 책에 나오는 '쿠엔토'는 스페인어로 이야기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야기가 지니는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이야기가 어떤 전달이나 재미에 있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어쩌면 이야기로 우리는 우리의 삶을 이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야기가 없었다면 우리는 어떤 희망이나 기대를 쉽게 품을 수 없고, 인류가 탄생한 이래로 살아온 삶의 지혜를 보존할 수 없다.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은 생각하는 힘이라고 흔히 말하지만 그 생각과 감정을 촘촘하게 끝까지 누릴 수 있게 해 준 것은 인류가 만들어 온 수많은 이야기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