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초등학교 3학년 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10살 아이들은 처음 과학이라는 과목을 접하다 보니 호기심도 많고 수업 시간에도 잠시도 쉬지 않고 활동한다. 오늘은 자석팽이를 가지고 아이들과 자석의 성질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 아이들은 자기가 먼저 하겠다고 소란스럽다. 과학실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아이들 실험을 돌아보던 내게 한 여자 아이가 다가온다. 보통 이런 경우는 둘 중 하나다. "선생님 화장실 다녀와도 돼요?" "선생님 저 아파요." 그런데 오늘 아이가 내게 다가와서 한 말은 말도 안 되는 말이었다.
"친구가 저 엄마 없다고 놀려요." 여느 때처럼 멀리서 다가오던 아이를 보며 화장실 아니면 보건실에 다녀오라고 말을 준비했던 나는 낯선 말에 잘 못 들은 게 아닌가 싶었다. "뭐라고?" 아이 키에 맞추어 몸을 숙여 귀를 갖다 댔다.
"저는 엄마가 돌아가셔서 없어요. 그걸 저 애가 엄마 없다고 계속 놀려요." 라며 한 아이를 가리켰다.
그 순간 내 몸이 뜨거운 불에 덴 듯 먼저 반응했다. 수업이라는 상황도 잊고 팔을 벌려 아이를 꼭 안았다. 찰나의 일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런 말을 내게 해야 했던 아이의 차가워진 마음이 내 온기로라도 녹아내리기를 바랐던 것 같다.
"많이 속상했지? 선생님이 가서 하지 말라고 해줄게."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따라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아이를 놀렸던 아이의 짝은 아이가 자리에 돌아가자 내가 눈을 마주칠 틈도 없이 세상 미안한 눈으로 아이의 어깨를 쓸어내리며 말했다.
"미안해. 내가 잘 못했어." 아이는 그제야 마음을 위로받은 듯 괜찮다며 자기 활동을 시작했다.
혹시나 눈물 자국이라도 얼굴에 남지 않았을까 염려되어 그제야 아이의 얼굴을 찬찬히 봤다. 아이의 얼굴엔 눈물 자국이 없었다. 아이가 이런 일은 울 일이 아니라는 듯이 강해져 버린 것 같아 마음 한편이 아렸다.
수업이 끝나자 아이가 바로 교실로 돌아가지 않고 내 주위를 맴돌았다. 아이를 불러 오라고 손짓을 했다.
"선생님이 학교에서는 엄마 해줄게. 학교 엄마!"
"누가 괴롭히면 선생님한테 찾아와. 혼내줄 거야!" 아이의 얼굴에 설핏 미소가 비친다.
학교라는 곳에서 정말 많은 아이들을 만난다. 그런데 아이들마다 각자 품은 사랑과 희망의 씨앗만큼 갖지 않아도 될 힘듦을 갖고 오는 아이들이 많다. 가정폭력과 아동학대, 부모님의 부재, 어려운 가정환경 등 내가 교직을 시작했던 20여 년 전 보다 더 그런 모습 아이들을 만나는 일들이 많아졌다. 문제 행동을 하거나 어두워 보이는 아이들은 유달리 마음이 쓰인다. 제 나이의 아이에게는 너무나 평범한 보통의 일들이 그런 아이들에게는 가 닿을 수 없는 일이 된다는 것이 서글프다. 더 많은 아이에게 학교 안에서라도 조금 더 견디게 하는 따뜻함을 줄 수 있는 학교엄마가 되어 주고 싶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