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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Feb 25. 2023

멈춰야 보이는 거네

제주에 산다는 것은 크게 마음을 먹지 않아도 언제든 바다, 산, 숲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찾는 이들이 많아지다 보니 정비된 숲길이나 수목원들이 많다. 어렵지 않게 닿을 수 있고 가서 복잡한 머릿속이나 답답한 호흡을 깊게 내뱉고 오면 응급처치를 받은 느낌이 들어 기회가 되면 자주 가본다.


가벼운 마음으로 근처 숲을 다녀왔다. 익숙한 길로 들어서니 몸은 습관처럼 발을 딛고 걷기 시작한다. 길이 잘 나 있기에 그저 걷기만 하면 되는 편안함이 있다. 그렇게 걷다 보면 가끔 걷는 속도가 빨라질 때가 있다. 분명 산책을 왔는데 자주 오던 곳이다 보니 익숙해진 모양이다. 생각보다 빠르게 숲을 걷는 것 같아 잠시 샛길로 빠져본다. 데크나 코코아 매트가 깔리지 않은 곳으로 시선을 옮기니 의놓여있다. 잠시 쉬어가자 앉으니 걸을 때와는 다른 눈높이 펼쳐진다.


"저기 봐!" 친구가 팔꿈치로 나를 살며시 치며 나지막이 말했다. 친구가 말한 곳으로 시선을 돌리니 딱따구리가 있었다. 나뭇가지에 세로로 중심을 잡고 부리로 연신 나무를 쪼아대니 '딱딱 딱딱'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급히 핸드폰을 꺼내 보지만 초점을 잡는 사이에 날아가버린다.

친구의 말에 따르면 제주를 상징하는 새인 제주 큰 오색딱따구리라고 했다.

아쉬움이 밀려올 때쯤 말을 아끼고 가만히 앉아있으니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이 요란했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날아오기도 하고 날아가기도 하며 쉼 없이 분주한 새들의 생명력에 기분이 좋아진다.

"여기를 그렇게 많이 왔는데 이런 새소리는 처음 듣네?" 

"멈춰야 보이는 거네." 구는 감탄처럼 내뱉는다. 운동한다고 빠르게 걸을 때는 놓쳤던 것들이 친구의 말처럼 멈추니 하나씩 보인다.

'느린 것이 삶의 레시피'라는 김영민 작가의 말처럼 느리게 있을 때 눈앞의 일상이 더 깊게 보는 것이 맞다.


가던 길을 멈추고, 늘 하던 일을 멈추고 시간을 낸다는 것은 나에게 일상을 바라보는 다른 눈을 훈련시켜 줄 소중한 기회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 새 한 마리가 푸드덕 날아오더니 딱딱 소리를 내며 나무를 고 있다. 작은 새가 부지런히 움직인다. 꽤 오래 머물다간 새가 신기해서 찾아보니 직박구리라는 새인 듯했다. 들의 생명력과 상을 음미할 기회가 주어진 오늘 하루가 참 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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