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일기예보만 하더라도 이번주는 내내 비가 온다고 하더니 장마기간임에도 내가 있는 제주는며칠 해가 난다. 마른장마인가 싶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해가 또 언제 날지 모를 일이라며 급히 바다로 향했다. 장마기간 특유의 습하고 답답했던 무거운 공기는 내려앉고 제법 기분 좋은 바람이 분다. 도착한 순간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빌딩과 차들이 그득한 도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시원한 바닷바람이다. 바다 저 멀리 집어등 불빛을 환하게 킨 한치 잡이 배들이 보인다. 진짜 여름이다. 나는 바다에 뜬 한치잡이 배들을 보면 여름이구나 싶다. 노랑 불빛을 내뿜는 한치 잡이 배들을 보면누군가 바다에 전등을 일렬로 달아 축제장을 꾸며놓은 것만 같아 이유 없이 설렌다. 작년 이 즈음 서울에 다녀오던 길 비행기에서 우연히 보게 된제주의 바다는 빛축제의 장소였다. 바닷가에서 내 눈에 일렬로 나란히 있는것 같아 보이던 한치 잡이 배들 뒤로 셀 수없이 많은 배들이 있었다.하늘의 별들이 바다위로 떨어진다면 이런 모습일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을 해봤었다.
또 한해의 여름이 왔음을 느끼며 나만의 여름 산책을 즐긴다.걸음수가 늘어날 때마다 몸은 따뜻해지고 기분 좋은 땀이 난다. 얼마나 갔을까 해수욕장이 펼쳐진다. 마을길로 이어진 산책을 하다 해수욕장 데크길로 들어서니 개장을 코 앞에 둔 설렘이 느껴진다.한치잡이 배들의 집어등 빛이 얼마나 밝은 지 파도가 쓸고 간 모래사장 위로 빛이 반사되어 멀리서 보니 은빛카펫 같다.
땅거미가 내려앉은 하늘과 바다 그 위에 떠 있는 배들로 눈이 즐겁다. 같은 장소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이 풍경을 즐기는 많은 사람들을 바라보는 재미도 있다.
가던 길을 멈추고 친구와 데크에 앉아 말없이 바다를 넋 놓고 바라보았다. 그저 예쁘다.바다향을 담은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며 바다 앞에 서니 오늘 하루는 무조건 행복이다.하루 동안의 치기와 어리숙함, 피곤이 가시는 순간이다.모든 계절 모든 시간 어여쁜 제주바다지만 내게는 한치잡이 배들이 동동 떠있는 여름 밤바다가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