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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Jul 08. 2023

엄마, 나 누구 아들?

14살 지구인 이야기

여느 해보다 부지런히 산 지난 반년이었다. 느닷없이 전혀 준비를 해 본 적이 없는 전직 시험을 준비했다. 시험 공고가 뜨고 1차 시험까지 딱 한 달 반. 부족한 시간만큼 그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 새벽에 눈 뜨면 어김없이 관련 분야 최근 기사들을 찾아 읽었고 퇴근 후에는 몇 시간 안 되는 내 공부 시간을 만들기 위해 아이와 저녁을 먹고, 아이가 학원을 가면 집 정리를 한 후 두툼한 가방을 메고 나와 머리를 쓸 공간을 찾아 공부를 했다. 아이를 혼자 키우다 보니 공부만 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주말에는 새벽에 일어나 아이가 자는 사이 집 근처 카페에서 공부를 하고 아이가 일어날 즈음이면 밥을 차려주고 다시 공부를 하러 나가곤 했다. 아끼는 후배들도, 친구들도 만나지 않았다. 좋아하는 책도 글쓰기도 미련 없이 미뤄두었다. 원래 내 것이 아니었던 것처럼. 이런 나를 보고 단군신화에 나오는 곰 같다고 친구는 말했다. 그렇게 딱 3개월. 늘 드디어 최종 합격 소식을 들었다.


나를 응원해 주었던 사람들에게 합격했노라고 소식을 알리면서 참 오랜만에 내가 괜찮아 보였다. 늘 내 삶의 무게를 나누어주기만 했는데 이런 소식을 전할 날도 오는구나 싶었다. 아이를 혼자 키우다 보니 중학생이 되기 전에는 단 한 번도 고려해보지 못했던 전직이었다. 교사 시절과는 또 다른 업무 강도와 불규칙한 출퇴근 시간으로 모든 면에서 쉽지 않은 길임을 알고 있지만 남들이 하는 건 나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시험을 준비하면서 아이에게 내가 너무 소홀해지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 방으로 침입해서 침대를 차지하고 누웠다. 자기를 감시하러 온 거냐고 아이가 장난을 건다. 아이가 공부하는 뒷모습을 보니 제법 소년티가 난다. 굵어진 다리 넓어진 어깨. 내가 공부하느라고 바쁜 사이 아이는 이렇게 또 한 뼘씩 자라고 있었다. 그런 아이의 등에 대고 이런저런 말들을 해댔다.


엄마가 합격하면 바빠질 거다, 네가 외로울 수도 있다. 혼자 저녁은 먹을 수 있겠니? 그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으려니 갑자기 마음이 무거웠다.

"네가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엄마한테 말해 줘야 돼. 언제든지 엄마는 너를 위해서라면 그만둘 거야. 너보다 소중한 건 엄마한테는 없어. 알았지?"

장난만 치다가 갑자기 진지모드로 변신한 엄마를 보더니 아이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엄마! 나 누구 아들?"

아이의 질문에 나는 마치 퀴즈를 맞히고 있는 사람처럼 머뭇거림 없이 내 이름 세 글자를 큰 소리로 외쳤다.

"걱정하지 마. 나 엄마 아들이잖아!"

아이의 말에 갑자기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고 아이도 눈물이 차오르는지 고개를 떨구었다. 둘 사이의 공기는 차분히 가라앉았다.


나를 알아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참 복된 일이다. 내가 꿈을 꿀 수 있도록 허락해 주고 나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아이에게 합격하고 편지를 썼다. 아침에 아이가 그 편지를 가져다 자기 책상 가운데에 둔 것이 보였다. 그 모습이 우리 둘이 서로 더 잘하기로 한 서약서 같았다. 아이에게 더 멋진 엄마로 서고 싶어졌다. 한 아이의 전부로 살아간다는 건 아이 앞에서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지는 것과 같은 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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